201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한 모습: 유사 진정성

임명묵
임명묵 인증된 계정 · 다양한 걸 좋아합니다
2021/10/14
본래 컨텐츠가 제공해줄 수 있는 대리만족 경험은 여러가지가 있다. 로맨스는 이성에 대한 로맨틱한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대리만족을 제공해준다. 판타지 소설은 주인공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적을 물리치는 과정을 통해 성취욕에 대한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컨텐츠를 집단적으로 소비하고 2차창작 등을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과정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기여한다는 대리만족을 준다. 물론 이런 경험이 온전히 가짜는 아니고, 실제 그와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대리만족'이라는 표현은 너무 과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경험이 현실과 거리가 먼 픽션의 이야기, 혹은 설령 현실이어도 일상과 괴리되어 있다는 데서 컨텐츠의 본질적 성격이 대리만족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그렇다면 '그렇게 따지면 대리만족이 아닌 진실된 것은 무엇이냐'는 비판이 추가로 있을 수 있는데, 사실 생존의 기본적 욕구를 넘어서 문명사회가 창작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모두 본질적으로 대리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개별 컨텐츠/활동은 현실성과 가상성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에 위치해 있고, 현대 사회, 특히 인터넷 이후의 컨텐츠 소비는 가상성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대리만족의 성격이 지난 수십년 간 급속도로 짙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리만족으로서 성격이 강화될 경우 컨텐츠는 치명적인 한계를 갖게 된다. 강렬한 경험을 제공해줄 수는 있을지언정, 소비자들이 이것이 결국 현실의 일이 아닌 픽션, 혹은 일상과 괴리된 것이라는 데서 위화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멋진 캐릭터와의 로맨스를 몰입해서 감상하면서 현실의 외로움을 잊는다 하더라도 결국 컨텐츠는 끝나기 마련이고, 결말을 보았을 때 드는 그 허무한 감정은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대리만족 컨텐츠가 사회 일반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이 가상성의 한계를 돌파할 추가적인 혁신을 만들어야 했다.

2010년대 한국 엔터테인먼트에서 발전시킨 '유사 진정성(pseudo authenticity)'이 바로 그런 종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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