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사절

수미
2024/04/02

   
 마을 행정복지센터를 지나다가 야외에서 김장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열심히 김치를 치대는 중년 여성들의 모습. 천막 아래에 차곡차곡 김치통이 쌓이고 있었다. ‘사랑의 김장 봉사’라고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사랑, 김장, 봉사. 모두 연말이면 도드라지는 말들.
 
 나는 ‘김장’과 ‘봉사’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다. 매년 허리가 부서져라 배추를 절이고 김치를 치대는 양가 어머니들의 노동을 보면서 ‘내년에는 그냥 사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장’을 떠올릴 때 따뜻한 수육에 척척 걸쳐 먹는 김치의 아삭함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김장의 수혜자일 가능성이 크다. 욱신욱신 저린 허리와 뻘건 고춧가루가 묻은 얼굴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김장 노동자로서의 시간이 길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주로 엄마들이 총대를 메고 준비하는 김장의 모습을 볼 때면 K-중∙노년 여성의 희생 결정체를 보는듯한 기분이 든다. 

 김장 노동의 압박은 학교에서도 이어졌다.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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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큰 소리로 웃는 여자. 에세이 <애매한 재능>,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저자. 창원에 살며 <우울한 여자들의 살롱>이라는 모임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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