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님의 <모두의 입양>이 말하는 입양의 시선.

새로샘 · 글 읽고 쓰기 즐기는 사람
2022/07/22
<모두의 입양>  이설아

1.

부제가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내가 이 부제를 다시 쓴다면, "입양을 통해서 바라본 사랑의 행위", 이렇게 쓰겠다.

"사랑은 책임이다"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책임이란 단어 안에는 자기희생의 면모가 있다. 하여 이 정의가  사랑에 대한 완전한 오역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책임을 사랑에 가장 닿는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한 책임으로 온몸이 천근만근일때 책임으로 사랑을 완성하겠다는 결기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사랑의 오역, 불협화음, 급기야는 존재의 부정이 도사리게 된다.

내가 이 일의 증인이다. 나는 자식을 독박으로 키웠다. 아빠는 늘상 외국 장기출장이거나 단기 출장 중,  50대의 남자들이 대부분(?아닌 분들께 죄송) 그런 것처럼 육아와 양육은 그냥 집안일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의외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나의 적성이었던 데다, 나의 모성(이라 부르고 집착이라 읽는다)은 내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 친부모님에게도 맡기지 못할만큼 유별났다.

한 녀석을 손에 잡고, 다른 한 녀석은 등에 들쳐매고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할머니 연배의 나이드신 분들이 꼭 한 마디씩 한다.
"아구, 한참 힘들 때다. 아들 둘 얼마나 힘들까?"
그러면 나는 부러 큰소리로 내 아이들이 듣게 "아니에요. 하나도 안힘들어요. 얼마나 이쁜데요!"라고 응답했다. 나는 아이들이 자신들 때문에 엄마가 힘들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전면 방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니들의 존재는 엄마의 행복이지, 엄마의 짐이 아니야,라는 메세지가 아이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이것을 잘했다 싶어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할 수 없는 순간조차도 존재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던 "지나친" 나의 마음도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작동하는 것이었다. 책임이라는 현실이 내 한계를 넘어설 때 나의 사랑은 절망이 되었고, 분노가 되었다. 그리고 나를 학대하는 도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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