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은 미국 대법원, 2화: 처마에 달린 닭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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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30
나는 미국에 건너와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중서부에 위치한 이 대학교에는 가족이 있는 대학원생들을 위한 아파트 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워낙 단지가 크고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학생과 가족이 많아서 학교에서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들 중에서 레지던트 매니저, 즉 일종의 관리인을 선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학교 입장에서는 문화적인 갈등을 조율하고, 일종의 자치를 허용하고, 운영비를 절약하려는 일석삼조의 취지였던 것 같다.

매니저의 대단한 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야간, 혹은 당직(이라기보다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비상용 휴대폰을 들고 있게 하는 거다)을 서고 가끔 생기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을 하면 아파트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약간의 월급까지 주는 좋은 자리였다. 나는 운 좋게 그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간혹 해결하기 힘든 주민 간의 갈등을 중재해야 했다. 중동지역부터 유럽, 아프리카 동아시아까지 다양한 문화가 섞이면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들이라고 해도 다양한 오해와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결해야 했던 문제 중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주말 오후에 당직 휴대폰을 옆에 두고 집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오래된 일이라 전화를 한 사람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랍계, 혹은 인도계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옆집에서 닭을 현관에 매달아 두고 있는데 보기에 흉하고 위생상 좋지도 않으니 좀 치우라고 말해달라"는 거였다.

현관에 닭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전화로는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어서 문제의 장소로 직접 갔다. 가봤더니 좀 충격적이었다. 이 학생의 가족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중국계 학생 가족이 있는데, 생닭을 부위별로 잘라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 처마를 빙 돌아가며 줄줄이 걸어놓고 있었다. 
이런 단지였고, 대략 정면에 보이는 현관 처마가 문제의 장소였다.
문제의 집 벨을 누르고 거주자와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대학원생은 학교에 갔고, 중국에서 금방 온 듯한 할머니(아마 학생의 어머니)가 아주 어린 손녀와 함께 집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영어로는 대화가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눈치를 보니 이 할머니가 살던 곳에서는 그렇게 생닭을 잘라 밖에 걸어 건조하는 풍습이 있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처마 밑에 메주를 걸어 건조했고, 뉴욕 브루클린에서는 소시지와 햄을 널어놓고 건조해 파는 가게들이 있으니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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