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똥밭 위에 살고 있다 - <녹천에는 똥이 많다>(6)

칭징저
칭징저 · 서평가, 책 읽는 사람
2023/03/23
이창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녹천은 도시개발의 모순을 보여줌과 동시에 소시민적 안락을 꿈꾸던 준식의 허위의식 또한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즉, 도시개발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낙후된, 새롭지 않은 녹천의 분위기는 준식의 성공과 꿈을 만족시킬 것 같지 않으며 그 허상을 드러내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늘 자신보다 우월했던 민우 앞에서 준식이 ‘나름대로 성공한’ 삶이라고 보여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물은 작으나마 소시민의 행복이라 표상되는 강북지역 상계동 녹천역 주변의 ‘소형 아파트’였다. 당대 사회에서 ‘아파트’는 천민자본주의의 성공 상징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식이 일주일 전에 새로 이사 온 아파트 단지를 가려면 황량한 역 한창 골조공사를 하고 있는 기괴한 시멘트 구조물을 지나야 하며, 공장 폐수가 흐르는 시커먼 개천 또한 지나야만 했다. 즉, 성공의 상징물로 여겨지는 아파트와 모순적인 주변 환경은 과연 이것이 ‘성공’의 상징물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준식의 소시민적인 꿈 역시 준식보다 더 가난한 소시민들의 터전을 빼앗은 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집이 꽤 넓어 보이네. 몇 평이나 돼?” 
“분양 평수는 23평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는 16평이라든가 17평형이라든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준식이 덧붙였다. 
“이래 봬도 오랫동안 이게 내 꿈이었어. 난 이제 그 꿈을 이루었지”
“이 동네가 아파트 짓느라고 원주민 집들을 강제 철거해서 시끄러웠던 곳이지?”
“그랬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동네 아파트를 싫다 할 순 없잖아?” 
   
이를 통해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소시민들은 하찮은 행복이라도 추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작은 꿈을 꾸어야 한다는 삶의 갈등과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그 속에서 또 다른 피해를 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이러한 복잡한 삶들의 연결점이 ‘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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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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