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 불량만화 소동과 청소년 자살 사건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9/21
1970년대 만화대본소 풍경. 출처-Designersparty

아무도 모른다 - 불량만화 소동과 청소년 자살 사건

1972년 1월 31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정병섭 군은 <철인 삼국지>라는 만화에 푹 빠져 있었다. 이 만화는 삼국지의 등장인물을 로봇으로 바꾼 일종의 과학 역사 만화였다. 몇 번을 반복해 보고 또 보았는지, 대사까지 줄줄 욀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장비’였다. 만화에는 마침 로봇으로 설정된 ‘장비’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병섭 군은 자신도 죽었다가 살아날 수 있을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는 친누나에게 자신이 부활하는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스스로 목을 조른 정병섭 군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사건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불량만화가 사람을 죽였다고 난리를 쳤다. 당장 신문과 방송에서 학생들이 불량만화에 빠져 학업을 소홀히 하고 나쁜 생각에 물든다고 비난했다.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불량만화를 모두 없애야한다며 만화에 적대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사회 전방위적으로 불량만화 추방 캠페인이 벌어졌다. 각 지역에 있던 만화방은 날벼락을 맞는다. 경찰이 들이닥쳐 불량만화를 압수한다는 빌미로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갔다. 어떤 만화가 해롭고 어떤 것이 괜찮은지에 대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경찰은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만화책을 몽땅 걷어 들였다. 

수 만 ...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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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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