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잘 것인가?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5/01
수면의 실패는 하루의 실패다.

종종 마음속으로 이렇게 단호한 주장을 해보고 마음 상해서 반론을 찾곤 한다. 수면의 질이 낮아지면 하루 내내 능률이 떨어지는 법이니까 말이 되긴 되지만 실패라고 단정지을 것은 없지 않나…… 잠을 잘 못 잤어도 커피로 버티면서 새로운 발견도 하고, 내 영역도 넓히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제라늄 화분처럼 하루의 보석 같은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로를 호소하는 두뇌를 약물로 강제 각성시켜서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정상적이거나 바람직한 행태는 아닐 테고, 커피를 마신다 해도 능률이 정상 이상이 되진 않는 데다, 갚지 못한 수면 빚은 결국 몰려온다고 하니 수면의 실패가 하루의 실패라는 극단적 주장은 가혹하게 들리더라도 대체로 사실인 것 같다. ‘아, 잠을 설쳤으니 오늘 나는 완전히 쓰레기, 패배자야…..’ 하고 실의에 젖을 것까지는 없겠지만.

아무튼 부족한 숙면이 여러 지점에서 삶을 위협한다는 것을 매우 절실히 느낀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 잠을 잘 못 자면 일단 피곤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우울해진다. ‘피곤해서 그런가, 의욕이 좀 없네…….’ 정도가 아니라, 심연으로 통하는 소용돌이 또는 블랙홀 같은 게 생성되어 그 흡인력, 중력권에서 벗어나기가 아주 힘들어지는 것이다. 뇌과학적으로도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는데, 이럴 때 잡고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갈 디딤돌 같은 행복이 충분하지 않으면 폭풍우 속에서 몸을 돛대에 묶고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 오딧세우스 같은 꼴이 되고 만다. 만사 정상적으로 풀릴 턱이 없다.

그냥 비유적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은 명백히 모든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 쉽게 풀릴 만한 소설의 단서 같은 것들도 잘 떠오르지 않아 헤매게 되고,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도 어려워진다. 단순 타이핑도 오타가 늘고, 짬을 내서 하는 게임 따위도 쉽지 않다.

최근에 쓴 단편 소설은 누워서 플롯을 궁리하다 반쯤 잠들었다가 눈을 뜨고 아이디...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135
팔로워 23
팔로잉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