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4일의 투쟁... 그들이 길바닥에서 먹고 잔 이유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3/11/27
모든 상업조직은 원료, 노동, 기계를 가장 싼 값에 모은 다음 그것을 결합하여 제품을 만들어 가능한 가장 높은 값으로 팔려고 한다.
(...중략...)
생산 라인 가동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지면 가동을 중단하기도 하는데, 이때 기계는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지 않는다. 석탄 사용을 중단하고 천연가스를 사용해도 도태된 에너지 자원은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는 자신의 가격이나 존재를 줄이려는 시도에 감정으로 대응하는 습관이 있다. 노동자는 화장실에 들어가 흐느끼기도 하고, 실적 미달에 대한 두려움을 술로 달래기도 하며, 해고를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141p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현대인이 삶 가운데 불안을 느끼는 이유, 나아가 지나칠 만큼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 즉 성공이며 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문제를 파헤친 흥미로운 저술이다. 방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시대적 문제를 꿰뚫어낸 이 저작 가운데 몇몇 문장은 적어두고 수시로 다시 읽어야 할 만큼 깊은 지혜를 담고 있다 해도 좋겠다.
 
책은 다수 노동자를 고용하는 현대적 상업회사의 발전부터 고용된 노동자들의 필연적 불안까지를 역시 흥미롭게 서술한다. 위에 언급한 문장은 그 일부로, 저자는 회사의 해고결정과 그에 따른 노동자의 반응을 이야기한다. 특히 우울을 느끼고 알코올에 의존하며 극단적 선택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문장은 오늘날 노동자 해고 관련 문제가 속출하는 한국의 현실에도 남다른 감상을 안긴다.
 
▲ 재춘언니 포스터 ⓒ 부천노동영화제

지적인 시선이 닿지 않는 한국노동의 현실

보통의 뛰어난 통찰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나는 한 가지 지적을 하고 싶다. <불안>의 기업과 노동자에 대한 묘사 가운데 보통이 보지 못한, 혹은 놓치고 적지 못한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건 다름 아닌 현장이다. 실제 해고가 일어나는 노동현장의 현실을, 적어도 그가 익숙한 스위스나 프랑스, 영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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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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