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철학)내부와 외부, 원시와 현대 - 문(門)이란 무엇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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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문화비평
2023/03/23
문이란 무엇인가?(unsplash)
내부와 외부, 원시와 현대 - (門)이란 무엇인가?

누구에게 질문을 던지든 아마 모두가 곧장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저 금속, 나무, 혹은 유리로 된 판자를 가리키며 문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주변에 가리킬만한 것이 없다면 당신이 매일마다 끼익 이나 덜컥 하며 미는 그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아마 이러한 대답 이전에 너는 문도 안 달린 집에 사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에 문이 달린 것이 아니라, 사실 문에 집이 달려 있다. 집이 폭삭 내려앉아 문만 달랑 남더라도 문은 전처럼 움직일 수 있다. 또한 비록 그 너머에 있는 것은 내가 알던 집이 아니라 돌무더기 일지라도, 그곳에 살던 이에게 그 문을 열어보는 일은 씁쓸함을 참담함으로 확인하는 의미를 줄 수 있다. 허나 집은 멀쩡한데 문이 영영, 정말로 절대로 잠겨 버리면 집은 나에게 무의미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된다.

어쩌면 이는 철저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혼자 남은 문은 그저 나무 판자일 수 있으나, 잠겨버린 집은 그 안에서 안락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등을 기댈 수 있는 그루터기가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허나 우리는 집과 문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축은 한 공간과 다른 공간을 구분 지음으로써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 공간에 어떤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 거주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 없이 건축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고려는, 반드시 공간의 경계에서 이질적인 한 지점을 허락해야 한다. 다른 곳으로는 드나들 수 없으나 그 곳으로 드나들어야 하는 지점이다. 문이다. 따라서 문의 발명은 건축에 우선한다. 달리 말하자면, 문의 발명이 집에 우선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만이 집에서 산다. 한 무리의 원숭이에겐 서식지가 있지 집은 없다. 알맞은 그루터기에 기대 잠이 들 뿐 어디까지가 자신의 영역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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