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일본인 - 근대 초기 일본(인) 표상의 양가성

칭징저
칭징저 · 서평가, 책 읽는 사람
2024/02/02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글항아리>

두 얼굴의 일본인 - 근대 초기 일본(인) 표상의 양가성

인간은 언어라는 기호를 통해서만 자신의 사고를 남에게 전달할 수 있고 글을 쓰는 이는 전달하려는 내용 여하에 따라 무한정에 가까운 낱말 중에서 어떤 말을 골라내어 글로 편성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주체가 언론미디어일 경우 지금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문제를 포착하고 파악함으로써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던 바에서 비롯한다. 이렇게 해서 표현된 글은 사람들로 하여금 ‘읽기’라는 행위를 통해 그 글의 콘텍스트에 따라 읽고 그 글에 표출된 뜻을 수용함으로써 그 기능을 수행한다. 

로바트 스콜즈(Robert Scholes)는 “쓴다는 행위는 발화를 그대로 보존할 뿐 아니라, 감각을 통하여 직접으로 만질 수 있는 소재를 다른 매체에 번역하는 행위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기본적인 픽션 형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근대계몽기의 문자미디어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신문매체에 실린 잡보 기사도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광의의 문학형식의 글로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시기 잡보란에 실린 기사 중에는 정보의 정확한 전달이라는 범위를 넘어 다분히 집필자나 사건을 전달하는 자의 평론이나 창작의 의도가 감지되는 글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 소설을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글쓰기로 이해한다면, 신문 지면에 실린 기사는 상호텍스트성을 지니는 ‘소설’의 하나의 선(先)텍스트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사적 기사’가 아닌 여타의 기사들도 어떤 면에서 ‘소설’과 연관성을 지니는 글로 볼 수 있다. 일례로, <대한매일신문>(한글판) 1908년 6월 9일자 논설「남방의 한 완고생의 일을 긔록함」을 읽어 보자. 
   
오래지 아녀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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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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