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흔들리는 이유-사적이고 사소한

소요 · 돌보는 사람을 위한 돌봄 연구소
2024/03/26
#1
꽤 잘 알려진 비영리재단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같이 살고 있던 동생이 대기업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력서를 쓰다 보니 흔히 말하는 스펙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쭈뼛거리며 내가 다니던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동생의 부탁에 나는 욕부터 했다. 머리에 똥만 들었다고. 넌 글러먹었다고. 자원봉사는 평소에 마음에서 우러나 하는 것이지, 너 스펙 쌓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그땐 지나치게 이상적이었고 지금은 스펙 쌓자고 봉사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요 이상의 독설을 날렸다. 내 말에 수긍한 건지 아니면 애초에 크게 기대도 안 했던 건지 동생은 서운해하지 않았고, 어찌어찌 내 도움 없이도 용케 대기업에 입사하여 아직까지 잘 다니고 있다. (오히려 내가 욕해서 정신차리고 진솔하게 지원서를 쓴 탓에 입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해피엔딩에 조용히 잊혀질 뻔한 이 일은 조국 사태에 벌떡 일어나 내 뒤통수를 갈기는 듯 했다.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특히나 크게 봤을 때 비슷한 정치 지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뭐라고, 비영리재단에서 일하는 게 무슨 대단한 공직에서 봉사하는 거라고 그 깔끔을 떨었는지, 허위 증명서를 위조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무슨 특혜를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 난리를 떨었는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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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씁니다. 죽을 거 같아서 쓰고, 살기 위해 씁니다. 예전엔 딸을, 지금은 엄마를 돌봅니다. 돌보는 사람을 위한 돌봄을 연구합니다. 잘 사는 기술과 잘 죽는 기술을 개발하고, 어쩌다 지방소멸도시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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