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점보' 김영희 선수의 명복을 빌며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2/02
점보 김영희 선수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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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몇 번이고 한 얘기고 끄적이기도 했지만 7-80년대 한국 스포츠 중계를 지켜보던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이름들이 있다. 중국 탁구의 만리장성 덩야핑, 남자로는 장지아량. 말레이시아 골키퍼 아르무감, 수비수 소친원, 그리고 중국 여자 농구의 거인 진월방. 중국 남자 농구에도 240센티미터에 가까운 거한 목철주가 있긴 했지만 진월방의 이름값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남자농구보다는 여자농구가 더 세계 수준에 근접해 있었기에 여자농구를 더 볼 기회가 많았고, 그래서 진월방의 이름과 활약을 더 보고 들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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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월방의 키는 보도마다 다르다. 1980년 처음으로 선보였을 때에는 207cm (198이라거나 210cm이라는 보도도 있다)였다. 대충 서장훈과 비슷한 키다. 남자농구팀에서도 껑충 솟아보이는 ‘공룡’ 서장훈의 덩치를 한 여자가 농구판을 휘저으니 그만한 공포의 대상, 아니 공포를 느끼기도 전에 체념의 대상이었을 것 같다. 그것도 모자라 키는 점점 더 자랐다. 1984년 LA 올림픽 때는 2미터 15센티미터였다고 한다. 가히 인간 만리장성 같은 존재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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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월방이 한국 사람들 앞에는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것은 1980년 방콕 아시아 청소년 농구대회에서였다. 이 즈음만 해도 중국 여자 농구는 한국 여자 농구팀의 요즘같은 ‘넘사벽’이 아니었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 중국이 처음 등장한 이래 1983년까지 통산 전적이 6승 2패일 정도로 오히려 한국이 앞서 있었다. 이때 중국이 내민 회심의 카드가 2미터가 훌쩍 넘는 거한 아니 거녀 진월방이었다. 하지만 한국에도 대책이 있었다. 당시 숭의여고 3학년이자 국내 최장신 (198cm로 보도) 김영희였다.

진월방과 김영희 (신화사, 중앙일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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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순 박양계 등 추억의 스타들이 홍안의 얼굴로 코트를 누비며 중거리슛을 쏘아대는 가운데 김영희는 중공의 장대 진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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