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의 퀴어談] 이제 혐오에 제자리를 찾아줄 때
2024/08/28
I HATE you. 종종 미드에 등장하는 문구다. 내게 이 말은 드라마 대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데 어릴적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적 감정(Traumatic emotion)이 바로 혐오이기 때문이다. 어릴적 뉴욕에서, 대학원시절 위스컨신에서, 금융회사에서 일하던 토론토에서 나와 함께 하던 외국인이라면 한 두번 쯤 던지던 질문이 "Why do you have so many hates around you?", 왜 너는 그렇게 혐오하는게 많냐는 질문이었다. 혐오범죄(Hate Crime)을 일찍이 인식하고 법제도로 엄중하게 다스리는 북미문화권에서, 틈만 나면 온갖 걸 혐오한다며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시아 여자가 얼마나 눈에 띄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렇다 - 난 쉽게, 깊이 혐오의 감정을 느끼는 병에 오랫동안 시달려왔다. 그 덕분에 외국에서 거주한 기간에 비해 내 영어는 정확하고, 샤프하며, 공격적이다. 혐오를 보다 잘 표현하기 위해 모국어를 접어두고 영어습득에 몰입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혐오에 범죄가 따라붙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며칠 전 집 근처에서 벌어진 부천호텔 화재사건 역시 1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낳았지만 댓글로 사망자를 조롱하는 혐오질환자가 경찰에 의해 색출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을 했건, 남겼건 간에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객체성 상실'의 미명인을 그렇게나 싫어할 이유란 뭘까, 묻게 된다. 그 시간에 바로 옆 식당에서 거한 점심을 즐기며 하하호호 즐겁게 웃고 호텔앞을 무심결에 지나던 나도 할 말은 없다만은.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을 꼽으라면 고독을 들고 싶다. 소외감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내 감정은 물론,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절망감, 그래서 어쩔 줄 몰라하는 긴밤의 고통, 고독의 모습이다. 문제는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태원동 캐슬 테라스에서 서울을 한 눈에 담고 앉은 50대 재벌이나 서울역 12번 출구앞 공원을 게토삼아 먹고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