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월호 10년 첫번째 - 안타까운, 그래서 유독한
2024/04/16
나의 세월호 10년 1 – 안타까운(?) 그래서 유독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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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2001년에서 2025년까지의 4반세기 중 한국 사람들의 뇌리와 가슴에 가장 큰 충격을 던진 사건으로 세월호 참사를 꼽지 않기란 어려울 듯하다. 멀쩡한 백화점이 무너지고 출근하던 한강 다리가 끊기는 일이 벌어지는 등 사건 사고에 그런 대로 익숙한(?) 한국 사람들이라지만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는 질적으로 달랐다. 처음에는 ‘전원구조’ 됐다고 했다가 별안간 눈앞에서 6천톤짜리 배가 생으로 뒤집어지는 영화 같은, 그러나 현실이라서 천 배 만 배 끔찍한 풍경을 5천만이 TV로 지켜봐야 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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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가 없었다. 어디 남태평양 한구석도 아니고 뻔히 근처 섬도 보이는 남해 바다에서, 그래도 OECD 회원국이라는 대한민국 영해에서 여객선이 넘어지는데 제대로 된 조직적 구조 활동도 없이 수백 명의 목숨이 속절없이 바다 속으로 쓸려 들어갔다는 사실이 정말로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가 온 국민이 가슴을 치고 눈을 크게 치뜨고 있는데 대통령은 오후쯤 대책본부에 나타나 뻘소리를 했다. “구멍조끼를 입었다는데 그게 그렇게 발견하기 힘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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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그 말이 나는 대통령 박근혜의 운명을 결정지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순간 대통령 박근혜는 철저한 대한민국 ‘비국민’(非國民)이었다. 지금 주변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좋다. 다른 날은 몰라도 2014년 4월 16일날 뭘 하고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머리 나쁜 사람도 , 기억력 유난히 딸리는 사람도 그날 누구를 만났는지 누구랑 밥 먹었는지, 그러다가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그 뒤에 뭘 했는지 대충은 꿴다. 적어도 보수 진보 따위 구분없이, 5천만명이 발 동동 굴고 가슴 쥐어뜯는데 대통령이란 사람이 희생자들이 배 안에 갇혀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대책본부에 나타났으니 그 역시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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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쩍은 얘기로 나이를 먹은 남자는 여성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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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2001년에서 2025년까지의 4반세기 중 한국 사람들의 뇌리와 가슴에 가장 큰 충격을 던진 사건으로 세월호 참사를 꼽지 않기란 어려울 듯하다. 멀쩡한 백화점이 무너지고 출근하던 한강 다리가 끊기는 일이 벌어지는 등 사건 사고에 그런 대로 익숙한(?) 한국 사람들이라지만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는 질적으로 달랐다. 처음에는 ‘전원구조’ 됐다고 했다가 별안간 눈앞에서 6천톤짜리 배가 생으로 뒤집어지는 영화 같은, 그러나 현실이라서 천 배 만 배 끔찍한 풍경을 5천만이 TV로 지켜봐야 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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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가 없었다. 어디 남태평양 한구석도 아니고 뻔히 근처 섬도 보이는 남해 바다에서, 그래도 OECD 회원국이라는 대한민국 영해에서 여객선이 넘어지는데 제대로 된 조직적 구조 활동도 없이 수백 명의 목숨이 속절없이 바다 속으로 쓸려 들어갔다는 사실이 정말로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가 온 국민이 가슴을 치고 눈을 크게 치뜨고 있는데 대통령은 오후쯤 대책본부에 나타나 뻘소리를 했다. “구멍조끼를 입었다는데 그게 그렇게 발견하기 힘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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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그 말이 나는 대통령 박근혜의 운명을 결정지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순간 대통령 박근혜는 철저한 대한민국 ‘비국민’(非國民)이었다. 지금 주변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좋다. 다른 날은 몰라도 2014년 4월 16일날 뭘 하고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머리 나쁜 사람도 , 기억력 유난히 딸리는 사람도 그날 누구를 만났는지 누구랑 밥 먹었는지, 그러다가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그 뒤에 뭘 했는지 대충은 꿴다. 적어도 보수 진보 따위 구분없이, 5천만명이 발 동동 굴고 가슴 쥐어뜯는데 대통령이란 사람이 희생자들이 배 안에 갇혀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대책본부에 나타났으니 그 역시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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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쩍은 얘기로 나이를 먹은 남자는 여성 호...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김어준씨의 다큐(?)에서 가장 분노했던 부분이 전문가들의 견해인냥 아무렇지도 않게 전혀 전문가스럽지 않은 아무말들이 쏟아져나오는 것이었습니다. AIS를 선위측정 장비로 소개하는 자막에서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앵카를 끌어서 배가 자빠졌다는 부분에선 머리를 감싸쥐었죠. 도대체 어떤 '전문가'들이 저 따위 소리에 고개를 끄떡이며 동의했다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하필 그 시기에 1년 가까운 승선을 마치고 연가를 받아 집에서 40여년을 선장으로만 승선했던 아버지와 배가 눕는 장면들을 지켜보면서 함께 속이 무너져버렸고 승객들을 놔두고 지들만 살겠다고 100% 도망나온 갑판/기관사관들을 보면서 구토가 쏠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많은 말들에 그저 멍때릴 수 밖에 없었죠. 10년째, 가슴 위에 놓인 바위하나가 아직도 내려가지 않고 놓여있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