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를 보고

써몬
써몬 · 글로소득은 가능한가요
2023/12/11
영화를 보면서 나는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를 떠올렸다. 사실 이 말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활동가들에게 실례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가시면류관을 쓰고, 채찍을 맞고,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면서도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수난을 당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라서 내 멋대로 떠올렸을 따름이다. 제 아무리 성인聖人이어도 걷는 자의 고통이 걷지 않고 이동해야하는 자의 고통에 함부로 비견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사회적 의의가 있다면 시각과 청각의 감각을 동원해 특정 상황을 보다 강렬하게 간접체험을 시켜준다는 것이다. 휠체어에 앉은 이형숙 활동가의 눈높이에서 카메라가 세상을 비출 때 영화 속 세계는 조금 더 높고 무겁게 느껴진다. 걷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장애인 시민의 시야에서 장애인 시민의 세계에 대한 단서를 간신히 얻어낸다. 올려다보기를 강요당한 자들의 세계에서, 내려다보는 자들을 향해 외치는 언어는 수시로 사회적 중력의 힘을 증명한다.

장애인 시민들이 수직적 역행을 시도하는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수평으로 움직이는 지하철에서 그저 수평으로 움직이려고 할 뿐이다. 그러나 그 수평의 움직임을 한국사회가 가로막는다. 평범하고 보통에 불과한 시민들의 입을 빌어서, 정치인들의 언어를 빌려서, 경찰이라는 행정력을 빌려서. 이 세계는 두 발로 걷는 자들에게만 평평하다. 휠체어에 앉아서 바퀴를 굴리는 순간 한국이라는 세계전체는 까마득한 철폐물이 되거나 가파른 절벽으로 돌변한다. 모두가 일상적으로 오가면서 서있는 그 지하철을 누군가는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동원해야 간신히 탈 수 있다. 살아있는 인간이 일사분란하게 벽으로 둘러싸는 이 세계에서 둥근 바퀴의 가능성은 완전히 봉쇄된다.

우리는 투쟁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가. 밀어내면 버티고 쓰러트리면 일어난다는 반동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어떤 자들에게는 그런 투쟁조차도 사치이다. 어떤 세계는 완벽하게 진압할 준비가 되어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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