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얼굴과 칼날의 댄스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4/03/13


참으로 남자답게도 매일 아침 면도를 하고 있다. 써놓고 보니 딱히 자랑할 일은 아니군. 하지만 이 짓도 오래도록 하다 보면 가끔 무슨 짓인가 싶은 회의가 들기도 한다. 수염을 매일 깎아서 얻는 이득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바닥 청소처럼 건강상 이득을 누리는 부분이 없진 않겠으나, 내 좁은 상식으로 생각해 보건대 어지간히 수염이 길어서 새로운 생명의 보금자리가 될 지경이 아니라면 위생 상태는 세안 만으로 적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컨대 빈번한 면도로 얻을 수 있는 확고한 이점은 미관상 깔끔하다는 것뿐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면도를 매일 하는 것도 여러모로 낭비라는 생각에 앞으로는 사흘에 한 번만 하기로 했다…… 라고 하면 아마도 징글징글하게 추접스러운 인간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겠지. 물론 그런 결심도 하지 못했거니와 그럴 엄두도 나지 않는다. 나도 일단은 체면이라는 게 있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고, 남 앞을 지날 때마다 마스크를 쓸 수는 없으니까 면도 정도는 매일 할 수밖에 없다. 숱이 많아서 하루이틀만에 수염이 그럴듯하게 기른 모습이 된다면야 깎지 않고 버틸 생각도 없지 않으나, 나는 사흘쯤 방치해봐도 최소한의 얼굴 관리를 포기한 꼬락서니가 될 뿐이었고, ‘수염이 자라 있는 텁텁한 느낌’을 견디기도 힘들었다. 수염이 자란 상태로 누릴 수 있는 이점이라곤 턱으로 손등을 긁기 편하다는 것 정도였다. 요컨대 내게 면도는 대체로 이득을 누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손해를 피하려고 하는 행위인 셈이다.

면도기는 오래도록 날면도기만을 고집했다. 롤모델이 될 가족들 모두 괜찮은 전기 면도기를 보유하지 않았고, 주변 친구들도 어느 전기 면도기를 썼더니 기가 막히게 좋더라는 식의 정보를 주지 않았으므로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선택지가 있는 줄도 모르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게임 얘기는 그렇게 신나게 떠들고 사는 족속들이 면도에 관해선 아무 정보도 주고받지 않다니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인데, 사실 나도 학생 때 면도를 언제 어떻게 했고 어떤 점이 불편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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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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