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은 미국 대법원, 4화: 대법원의 자기 모순
2022/07/07
앞선 세 개의 글에서 왜 보수 대법관들이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불만을 갖고 있었는지를 설명했다. 페더럴리스트 소사이어티를 언급한 3편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불만은 21세기에 와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결정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미국 연방 대법원이라는 존재의 특성에 기인한 중요한 원칙 때문이다.
선례구속의 원칙(Stare Decisis)
흔히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의 3부라고 하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는 각각 의회, 법원, 정부(대통령)로 대표된다. 그런데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사람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이들 중 사법부(the judiciary)를 가리켜 "가장 덜 위험한 부(the least dangerous branch)"라 불렀다. 정부는 군을 통제할 수 있고, 의회는 예산을 집행할 수 있어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법부/법원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법부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근거는 모두가 그 권위를 인정하는 정당성에 있다.
특히 최상급 법원인 연방 대법원의 경우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국가의 운영과 국민의 삶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대법관들의 경우 의회나 대통령과 달리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대통령이 지명하고 의회가 인준해서 임명될 뿐 아니라, 마치 왕처럼 종신직이다. 대통령과 의원들의 경우 국민이 직접 선택했고, 임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다소 무리한 정책을 펴도 어느 정도 눈을 감아주고 적어도 임기 동안은 정당성을 인정받지만 대법원은 다르다. 매 판결은 국민에게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다소 역설적이지만, 의회나 정부보다 여론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개별 판결을 여론에 따라 내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 판결이 대법원 판사들 개인의 신념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국민에게 분명하게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법관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법을 해석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대법관의 구성에 따라 판결도 달라진다"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건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작동 방식인데, 대법원은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