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시선] 돈의 논리가 모세혈관까지 스며든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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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4

[문학 속 한 장면] 오노레 드 발자크 作, <나귀 가죽>


한 여인에게 모든 열정을 불태웠지만 성과를 얻지 못하고 마지막 남은 돈마저 도박장에서 날린 젊은이 라파엘. 삶에 대한 환멸 속에서 센 강을 배회하다 운명처럼 한 골동품 가게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특이한 노인을 만난다.

라파엘은 노인에게 깊은 환멸과 죽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들은 노인은 그에게 한 가지 이상한 물건을 건넨다. 바로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진 ‘나귀 가죽’이다. 단, 한 가지 명심할 점이 있다. 소원이 이루어질 때마다 소원의 강도와 횟수에 비례해 가죽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죽의 크기는 곧 가죽 소유자의 남은 목숨을 표현한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가죽을 손에 넣을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 무서운 사실은 이미 가죽은 손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라파엘은 골동품 가게를 빠르게 벗어나지만 나귀 가죽은 ‘믿을 수 없는 전연성(展延性)’으로 늘어나고 부드러워져 그의 호주머니 속으로 쏙 빨려든다.(77쪽)

그 후 친구에게 과거사를 고백하다 물질에 대한 욕망을 토로하던 라파엘은 있는 줄도 몰랐던 먼 친척에게서 6백만 프랑이란 거액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나귀 가죽의 크기가 줄어들었음을 깨닫는다. 식당의 옆자리 사람이 “아스파라거스를 원하세요?”라고 묻는 단순한 질문에 라파엘은 경직된 태도로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소.”라고 답한다. 삶이 줄어드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죽음과도 같은 삶’을 택하게 된 것이다.
<나귀 가죽> 삽화. 왼쪽 벽에 걸린 나귀 가죽을 가운데 골동품점 노인이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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