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며] 펼쳐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홉시
아홉시 · 일상에 영감을 더하는 지식 채널
2022/06/13

[문학 속 한 장면] 연재를 시작하며

10년 동안 독서모임을 해오면서 자연히 ‘책을 읽는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됐다. 예를 들어 “나 이 책 읽었어”는 무슨 뜻일까? 모든 페이지의 모든 글자를 다 읽었다는 것일까?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뜻일까? 모든 페이지를 다 읽긴 했지만 내용을 잘 이해 못했다면 그 책은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 이해했다면 그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어려운 철학서 한 권을 완독하고 내용도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오역들로 가득한 책이었다면 그 책은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책의 줄거리와 핵심을 요약도 할 수 있고 이야기로 들려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책의 일부분만 읽은 경우는 어떨까?

세상에는 다양한 책이 있고 다양한 독자가 있다. 읽기의 방식도 모두 다르다.

책은 꼭 읽어야 할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책 읽기는 꼭 필요할까? 이 문제에 대해 답하기는 쉽지 않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순간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책을 몰입해서 읽고 난 직후에는 감격에 겨워 ‘이 책만큼은 누구나 읽어야 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2주 쯤 지나면—그러니까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감동과 흥분이 가시고 나면—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좀 민망해진다. 따지고 보면 사는 데 꼭 필요한 건 각자 사람마다 다 다른 게 아닌가. 내가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느꼈던 재미와 감동을 누군가는 영화 감상이나 드라마 시청, 만화책을 통해 얻을 수도 있는 일이다. 자신의 감동을 한 발짝 물러서 바라보면 민망함이 찾아온다. 뒤이어 모든 게 불확실해진다. 책을 읽는다는 건 이 민망함과 불확실함을 감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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