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다큐멘터리’ 제작 모금 사건 -나의 세월호 10년 3
2024/04/18
‘세월호 다큐멘터리’ 제작 모금 사건 -나의 세월호 10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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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 쏟아졌다. 그러면 신묘하게 의문의 ‘근거’들이 제시됐고 의문과 근거가 결합하면 이게 ‘합리적 의심’이 됐고, 여기에 다소간의 시간이 결합하면 집착에 가까운 확신이 형성됐다. “뭔가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뭔가 없는 게 드러나면 그 확신을 꺾어야 했다. “별 거 없구나.”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분위기는 오묘하게 흘러갔다.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뭔가 있다.”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뭔가 있어야 한다.”는 당위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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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황망한 참사였기에, 선원들이고 해경들이고 그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에, 퇴선 방송만 제대로 했어도 최소한 절반은 살았을 목숨들이 사라졌기에 모두가 느낀 통분함과 무력감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으니 평소에는 가당치 않다고 넘겼을 상상과 의심 속으로 쉽게 빠져들 수도 있었다. 그 중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든 것은 잠수함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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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충돌 후 선원들이 승객을 버리고 탈주했고, 해경은 그들을 집에 재우기까지 하며 보호했고 (이것도 음모론의 땔감이 됐지만 이유는 있었다.) 하필 세월호는 국정원 ‘소속’이고 (소속이 아니라 전쟁 등 유사시 징발될 수 있고 그때 담당 기관이 국정원이라는 의미. 세월호의 자매 배인 오마하나 호는 해군 2함대가 관리) 승객들이 ‘범행 현장’을 보지 못하게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했고 (이 방송한 사람은 탈출 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는 여객부 직원이었다. 그에게 방송을 지시한 사무장은 승객들을 구조하러 가겠다는 마지막 통화 후 배에서 나오지 못했다.) 결국 세월호 승객들은 배에 갇힌 채 죽었다는 시나리오였다. (이외에도 시나리오는 많다. 내가 꼽는 최악은 해경 123정이 밧줄로 세월호를 끌어당겨 최종적으로 침몰시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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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직후 벌써 ‘잠수함이 세월호를 들이받는 사진’...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