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낡은 로봇청소기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1/29
중고로 구입한 로봇청소기를 어찌저찌 2020년 10월부터 사용하고 있으니 로봇청소기 관리 경력도 3년차에 접어든 셈이다. 예전에도 다뤘듯이 내가 산 로봇청소기는 가성비가 좋기로 유명한 국내 ㄹ사 제품인데, 기본기는 충실한 한편으로 약간 맹한 구석이 있다고 할까, 상정되지 않은 문제에 대처할 능력이 적은 편이다.

예를 들어 충전기 바로 옆의 방문을 연 상태에서 기록된 지도가 설정되어 있을 때 방문을 닫고 가동하면, 몇 걸음 떼자마자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나머지 자신이 방이 닫혔을 때의 주변 모습과 가장 흡사한 다른 곳에 있다고 착각해버리는 식이다. 집어들거나 발로 밀어 다른 곳에 놓아도 자기 위치를 한참 파악하려다 포기하고 새 지도를 그릴 때가 적지 않다. 그러면 아직 덮어씌워지지 않은 이전 지도를 불러내어 로봇청소기의 위치를 다시 알려줘야 하는데, 익숙해지지 않으면 상당히 성가신 일이다. ‘가성비’ 제품들이 대체로 이런 식일 때가 많은 것 같다. 정해진 노선을 조금만 벗어나면 문제가 터지고 만다.

그럼에도 나는 처음 산 로봇청소기를 어르고 달래며, 타협점을 찾아서 잘 지내왔다. 배터리 수명이 다했을 때 아버지가 한 번 고치고, 이후에 모터가 고장났을 때 센터에 보내서 또 한 번을 고치기도 했다. 우리 사이에 이제 별 문제는 없는 듯싶었다. 서로가 서로를 깊이 이해했고, 나는 자리를 비우면서도 청소를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목가적인 청소의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데 2022년 연말, 이 관계에 큰 타격이 있었다. 새로운 로봇청소기가 생긴 것이다.

물론 멀쩡한 로봇청소기를 놔두고 새것을 사진 않았다. 여러 경로를 통해서 수많은 로봇청소기가 새로 등장했다는 소식도 듣고 그 로봇청소기들이 빼어난 물걸레 실력과 자동 먼지 비움, 자동 빨래 건조 기능 따위를 탑재했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완전히 남의 일로 생각했다. 비용 이전에 지금의 로봇 청소기에 큰 불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활용 쓰레기 배출일에 집에 들어오다 버려진 로봇청소기를 발견하고 말았다.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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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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