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격의 없거나 혹은 무례하거나 - <녹천에는 똥이 많다> 깊이 읽기(2)

칭징저
칭징저 · 서평가, 책 읽는 사람
2023/03/20
이창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
우선, 준식과 준식 아내의 대립 중심에 있는 ‘민우’를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설 속에서 민우에 관한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민우가 어떻게 사회에 대해 올바른 소리를 했는지, 어떠한 계획을 하고 있는지는 단편적으로만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단지, 우리는 당대 사회상황을 고려해보았을 때, 민우가 학생운동을 했고 사회 모순에 저항하고 있는 사회 운동가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순수함’의 상징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점은 ‘민우’를 그저 ‘순수함’의 상징으로만 볼 수 있냐는 것이다. 소설 초반부에서도 등장하듯이 사실 민우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으며, 남들의 시선 따위는 중요치 않게 생각한다. 
   
“여기서 내린다고? 여기가 형이 사는 동네란 말야?” 
“난 형이 아파트에 산다기에 제법 그럴듯한 중산층 동네일 거라고 기대했는데.” 

민우 녀석의 양말은 며칠 동안이나 갈아신지 않았는지 시커먼 땟국이 얼룩져 있었고, 게다가 엄지발가락 하나가 비죽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그러나 민우는 그런 눈치쯤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도 거리낌 없는 태도로 이 방 저 방의 문을 열어보았다.

“형수님, 생각보다 아주 미인이시네요. 우리 형 알고 보니 보통 수완이 아니네.” 
   
즉, 민우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행동하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말한다. 이는 좋게 포장하면 소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남을 배려하는 부분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민우의 태도가 뻔뻔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수배자가 된 상태에서 10년 동안이나 연락을 하지 않던 이복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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