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세대의 자살선언 - 장강명의 <표백> 다시 읽기(1)

칭징저
칭징저 · 서평가, 책 읽는 사람
2023/03/13
장강명, <표백> 초판본 표지
표백세대의 자살선언

<표백>의 작가 장강명은 동아일보 기자로 11년간 일했던 점이 눈에 띈다. 그래서인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며 속도감 있는 문장이 소설에서 돋보인다. 장강명은 <표백>으로 2011년 제16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 이후에도 <열광금지, 에바로드>, <댓글부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현수동 빵집 삼국지> 등 여러 소설을 발표하는데, 그의 글에서는 청년 세대를 향한 남다른 관심을 읽어낼 수 있다. 특히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표백>의 등장인물인 ‘휘영’을 화자로 재등장시키며, 작가가 <표백>에서 제시한 표백세대와 자살선언에 또 다른 작품으로 맞선 것이므로 주목할 만하다. <표백>에 대한 장강명의 대답인 것이다.

<표백>의 회색 표지에는 어딘가 비슷비슷한 인상을 가진 청년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 이미지와 ‘표백’이라는 제목 자체부터가 암시하듯, 이 소설은 ‘표백되어 가는 우리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이라는 키워드를 주축으로 삼는다. 줄거리는 복잡하면서도 간단하다.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소설의 줄거리를 시간 순으로 배열하여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여러 인물들, 사건들, 관계성들이 나열되지만 결국 소설의 내용은 ‘등장인물 세연을 비롯한 소설 속 청춘들의 연쇄 자살’로 압축된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세상의 구조적 모순과 불합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고 자살을 준비해온 ‘세연’은 ‘나’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에게 자살을 권한다. 그리고 이를 5년 후 ‘와이두유리브닷컴’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청년들의 연속 자살 행동으로 확산시키려 한다.

<표백> 속 인물들은 취업난, 비정규직 공포에 시달리는 20대인 ‘88만원 세대’의 전형이기도 하다. 이들은 ‘너희는 고생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누구보다도 빠르게 암울함 혹은 불안함을 감지한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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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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