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길 밖에 모르는 나라
2024/01/14
직진밖에 모르는 나라
대학에 가기 전까진 지방에 살았다. 어쩌다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 기차역이나 고속버스 터미널의 창구에서 표를 사서 서울로 갔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래 이제는 기차 표, 고속버스 표를 구매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사람을 대하는 대신에 기계를 사용해야 한다. 역내 배치된 무인 키오스크 혹은 스마트폰 관련 앱을 써야 한다. 여전히 창구가 있긴 하다. 그러나 열려있는 창구의 숫자는 적다. 창구만 믿고 갔다가는 이미 표가 매진되어 있기 일쑤다.
젊은 사람들이야 무인 키오스크든 스마트폰 앱이든 이용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피쳐폰과 다를 바 없이 사용하는 노인들은 이런 변화가 당황스럽다. 작년 말에 출간된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란 책을 쓰면서 고령의 어머니께 여쭤보니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기차표나 고속버스표를 구매해 본 적이 없으셨다. 실제로, 어쩌다 한국에 들어가서 서울역이나 용산역에 가보면 창구에서 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고객의 대부분이 노인이다.
이렇게 기술에 기반한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편리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일은 비일비재다하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 하여 대수롭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특별히,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정부에게는 이런 불평등의 문제는 중요하다.
필자는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 지 관심있게 지켜봤다. 미국 정부는 이런 예기치 않은 문제점을 고려해 새로운 기술적 변화를 꾀할 때 폴백 옵션(fallback option)을 준비한다. 폴백 옵션은 플랜 B다. 계획이 실패했을 때의 대안이다. 예를 들어, 작년 바이든 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 인권 헌장(AI Bill of Rights)의 다섯 가지 원칙 중 하나가 바로 이 폴백 옵션(Human Alternatives, Consideration, and Fallback)이었다. 인공지능을 통해서 자동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면 편리해질 일도 많지만, 그 변화가 모...
존스홉킨스 SNF 아고라 연구소 연구과학자. 미국의 대표적 시빅 테크 단체인 코드 포 아메리카(Code for America)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했다.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 (세종서적 2023)>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