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 있어 재현성은 필수 덕목인가?

권석준의 테크어댑팅 인증된 계정 · 첨단과학기술의 최전선을 해설합니다.
2023/07/04
과학이 하나의 지식 체계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유 방법론으로서,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문명의 파운데이션을 건설하는 툴로서 자리잡게 된 것은 새로운 발견과 현상에 대한 검증을 하나씩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느리지만 꾸준히 벽돌 쌓듯 진보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과학의 연구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라 (물론 요즘에는 점점 인공지능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지만), 연구 데이터에 인위적(?) 실수가 생기기도 하고, 재현이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재현이 안 되는 경우는 스스로에게도 해당한다. 예를 들어 내가 KIST 연구원 초년병 시절, 나는 반도체 나노선 (nanowire)를 합성하는 실험을 했었는데, 수열합성법 (hydrothermal process)을 통해 다양한 화합물반도체 나노선을 합성하곤 했다. 어느 주말 오후 (20여년 전에는 토요일에도 출근했다.), 나는 반응기 (오토클레이브)에 웨이퍼 조각을 적절하게 뒤집어 띄워서 배치한 후, 반응 용액의 농도를 미리 정한 수준에 맞춰서 실험을 셋팅했다. 그런데 그만 정해진 시간에 그 샘플을 꺼내는 것을 까맣게 잊고 퇴근해 버렸다.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월요일 아침까지 대략 40시간 넘게 오토클레이브에서 뜨뜻한 조건에서 천천히 익어간(?) 웨이퍼 표면 위에는 새하얀 샘플, 즉, 햇빛을 난반사할 정도로 작은 크기의 나노 구조물이 가득 자라 있었다. 월요일 오전에 출근한 나는 그 결과물을 꺼내 들고는 흥분해서 SEM 이미지도 찍고 XRD도 찍고 별 작업을 다 했다. 과연 샘플 내부를 들여다 보니 이전에는 보고된 적이 없는 것 같았던 나노 카네이션 비슷한 아름다운 구조물들로 가득했다. 이 나노미터 스케일의 구조물을 학계에 보고하면 꽤나 주목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래서 이틀 전에 했던 그 실험 조건을 그대로 흉내내어 (실험노트에 적어 놨기 때문에 암기할 필요도 없었다.) 다시 실험해 봤다. 그런데 왠일인지 한 달 내내 똑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는데도 그 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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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고 방법을 토대로 자연과 사회를 해석합니다. 반도체, 첨단기술, 수학 알고리듬, 컴퓨터 시뮬레이션, 공학의 교육, 사회 현상에 대한 수학적 모델 등에 관심이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반도체 삼국지 (2022)', '호기심과 인내 (2022, 전자책)'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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