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이어티’가 없는 카페의 공허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3/04/17

<카페 소사이어티>, <미드나잇 인 파리>, 그리고 그밖의 것들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했던가. 미각이 삶, 즉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면 후각은 ‘좋은 삶’을 위해 존재한다고. 미각기관인 혀는 후각기관인 코와 달리 대상과의 직접 접촉을 필요로 한다. 물론 미각도 간혹 대상과의 접촉 없이 자발적으로 감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컨대 몸이 아플 때에는 입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쓴 맛이며 신 맛이지만, 벗들과의 대화와 그 분위기에 취할 땐 쓴 맛과 신 맛마저도 신의 음료 ‘넥타’(nectar)처럼 달콤하다. 커피 한잔씩 테이블에 놓고서 쉼 없는 토론 속에 격론과 반론, 그리고 분노와 냉소, 또는 찬동과 동의가 겹쳐지는 카페의 공간은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구가되는 공론장에 다름 아니다.


문호들이 자주 찾은 카페 레뒤마고에는 이제 관객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위르겐 하버마스에 따르면, 19세기까지 자유로운 토론과 담론 속에 여론을 형성하는 공론장으로서 각광받아온 카페는 자본주의가 본격화한 20세기 들어 자본이 장악한 신문이나 TV등 대중매체에 여론형성의 기능을 물려주고 그저 커피나 주류를 파는 업소로 전락했다. 파리 생제르망데프레가(街)의 카페 ‘플로르’와 ‘레뒤마고’는 19세기 문호들이 즐겨 찾았고, 그후에도 사르트르와 드보브아르, 카뮈, 부르디외, 푸코, 들뢰즈, 헤밍웨이 등 수많은 지식인들의 지적 교류의 장으로 각광받았으나 이젠 명품 브랜드로 치장한 관광객들로 시끌벅적 넘쳐난다. 쓰디쓴 에스프레소나 와인을 홀짝이며 철학과 문학을 논한 지식인들의 모습은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나 희미하게 보인다. 카페가 담론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더 중시될 땐 커피나, 음료, 케이크 등 군것질의 맛은 부가적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지식인들이 ‘맛집’을 찾아 카페에 빈번하게 들락거렸을 것 같지는 않다.

카페는 학문을 교류한 아카데미아였고, 민주주의를 성찰한 아고라였으며, 느긋하게 앉아 사색을 즐기는 사유의 공간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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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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