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부당한 공권력입니다.

장파덕 · 20대 청년 법조인
2023/12/23
 어릴 때부터 반골기질 강한 사람이였다. 권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합리적 이유 없이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을 좀처럼 참지 못했다. 일상적인 체벌에, 두발규정에,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에 저항하곤 했다. 그 때는 선생과 학교당국이 나에게는 부당한 공권력에 해당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교수와 대학 당국의 학생자치 탄압과 대학기업화에 맞서 싸우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학생운동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대학이 태반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노력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저항의 정신만은 지금도 내 마음 속에 남아서, 공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은 늘 품고 있었다.

 몇 주 전에, 친한 친구와 카페에서 오랜만에 수다를 떨면서, 서로 요즘 하는 일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요즘 내가 과거사와 관련된 국가배상소송을 여러 건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격동의 시기에 군인이나 경찰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당한 분들의 유족들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나는 손해배상을 해 줄 수 없다는 입장에서 변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런 일 하는 게 조금 불편하지 않아?'라고 물었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몇 달 동안 '그런 일'을 하면서 딱히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나도 충실하게 내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저 수많은 '사건'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거창, 함평, 화순, 영양, 안동, 산청까지, 온갖 지역의 이름이 붙은 'OO지역 양민학살사건'과 관련된 소송을 수행하고 있지만, 일할 때는 'OO지역 양민학살사건'이라고 칭하지도 않았다. 소장에 첫 번째로 기재된 원고 이름을 따서 'OO지법 OOO씨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소장에는 구구절절 OO지역 양민학살사건의 내력과 유족들의 투쟁과정에 대해 적혀 있었지만, 크게 쟁점이 되는 부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있었다. 'OO지법 OOO씨 사건'의 'OOO씨'가 몇년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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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삶, 인간다운 삶에 관심이 있습니다. 정치학과 법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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