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포기하지 않고,
2022/05/03
프로젝트 얼룩소에서 활동하면서 작은 규모지만 스스로를 내 팬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가 쓰는 글 가운데 사회 이슈에 관한 글보다 사유가 담긴 에세이를 이분들이 더 좋아한다는 걸 잘 안다. 그 분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은 꼬박 에세이를 쓰려 노력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에세이보다는 사회 이슈 글을 더 많이 쓰고 있다. 민감한 사안들,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안들에 대해. 게다가 토론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나는 자주 표적이 된다. 손가락질 받는 대상이 되는 것. 오래 서로의 글을 봐오면서 정을 나눴던 사이라도 예외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만 쓰면 되지, 굳이 왜 욕 먹는 글을 쓰느냐고 누군가 내게 물을 수도 있다. 쉬운 길을 놔두고 나는 왜 어려운 길을 갈까. 나의 대답은 장강명 작가가 <책, 이게 뭐라고>에서 쓴 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에세이를 쓰면 치유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내게 에세이 작업의 매력은 거기까지다. 세계에 맞선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세상과 함께 흘러간다는 느낌이다. 긴 장편소설이나 논픽션을 쓸 때 비로소 세계와 싸운다는 느낌이 든다. p192-193
나는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 내가 살아내야만 했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글을 쓰며 스스로가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종종 공감을 얻으며 글을 쓰는 삶에 대한 동기도 얻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사회 이슈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건 내가 살아내야만 했던 이야기 속에 왜곡된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이 여기저기 꼬이고 상처가 났을 때, 원인은 단지 한 개인에게만 있지 않다.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분명 존재한다. 과거와는 다른 시대가 다가오고 세상이 변해가는 한, 기댈 곳 없는 한 개인은 속절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는 글을 쓰며 이런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