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날씨’가 사라진 날.
2023/12/12
아빠의 손에 질질 끌려가다시피 하던 여자 아이가 다리에 힘이 풀린 탓인지 바닥에 꼬꾸라졌다. 거친 숨소리에 맞춰 뽀얀 입김이 연신 뿜어져 나오고, 이제는 말라버린 눈물이 양볼에 땟국물 자국을 선명하게 남겼다. 엄마! 넘어진 아이의 목소리에 앞서 달리던 여자가 멈춰서 뒤를 돌아본다. 그녀의 시선이 아이 뒤로 재빠르게 접근하는 그림자로 옮겨가자 공포에 질린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것들은 지치지도 않고 오히려 속도를 높이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세 명의 냄새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쿠키가 선두에서 무리를 이끌고 있으니 그럴 법하다. 아이의 아빠는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아이의 손을 놓고 혼자서 옆으로 난 오솔길로 내달린다. 그런 아빠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소녀에게 어둠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든다. 곧이어 날카로운 비명이 고통의 크기를 가늠케 한다. 아이가 찢겨나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엄마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양손으로 귀를 막는다. 그리고 마지막 기도를 읊조린다.
업보.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르고 인간들이 운명이라고 부르는 연쇄반응도 일어난다. 그리고 고의였든 고의가 아니었든 결과가 벌어진 후라면 의도와는 이미 관계가 끊어진 것과 다름없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미를 밟아 죽인 경우와 재미로 개미를 으깼을 경우 개미가 죽었다는 사실만 남는다. 물론 정상참작이라는 것이 적용되겠지만 그 역시도 앞서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위험에 처한 개미를 살리는 일은 어떨까? 개미가 죽지 않도록 막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지수와 변수가 많아 속단하긴 어렵지만 일단 나는 선택했다. 개미를 위해 인간의 다리와 팔을 자르기로.
자,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갈 이야기가 있다. 거창하게 법칙이나 논리라고 부를 마음이 없으니 가볍게 들어주면 좋겠다. 만약 인간이 매우 추운 지방에서 거주하기로 했다면 어떤 식으로 거기에 적응할까? 아마도 온도 유지가 되는 집을 짓고, 난방 시설을 갖추고, 두꺼운 옷과 신발을 준비하고, 극...
- 직장 이력 :
삼성전자 (휴대전화 설계),GM대우 (Door Trim 설계),LG전자 (신뢰성, 품질 개선)
- 작가 활동 :
스마트 소설집 [도둑년] 발간
제24회 월명문학상 당선
브런치 작가, 헤드라잇 창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