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P부터 라디오까지, 불편함의 기억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2/26
휴대용 음원 재생기의 격동기를 거친 세대로서, CD플레이어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편하기로 따지면 당연히 이후에 나온 MP3플레이어가 압도적으로 편했지만, 레코드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장점으로 꼽는 이유들이 CD에도 제법 부합하는 편이라 CD로 음악을 들으면서 ‘어휴, 너무 불편하다. 음악만 들어가는 기기가 있었으면……’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불편에 민감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이겠지만…….

휴대용 CD플레이어를 사용할 때는 대형 서점이나 음반점 같은 곳을 들르거나 지날 기회가 있으면 들어가서 구경하고 어쩌다 뭔가를 사오는 재미도 있었고, 그렇게 모은 음반이 책장에 쌓여가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컸다. 자기 전에 다음날 학교에서 들을 음반 네다섯 장을 골라서 챙기는 것도 최강의 덱을 준비하는 듀얼리스트처럼 설레는 감이 있었다. 이때 나는 조그만 틴케이스에 CD 서너 장만 준비해서 갖고 다녔는데, 공부만 아니라면 뭐에든 심취하기 좋은 시절인지라 십수 장이 들어가는 두툼한 앨범을 갖고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친구에게 무슨 만화책 빌려보듯 음반을 빌려 듣는 것도 제법 재미있는 일이었다. 요즘은 그런 식으로 만질 수 있는 콘텐츠를 빌려주는 것도 드문 일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익히 알려져있듯이 CD플레이어 전에는 ‘워크맨’이라 불린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가 휴대용 음원 재생기로 보편적이었고, 나도 아버지가 어디서 구해온 것을 종종 갖고 다니긴 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게 그렇게 멋지게 느껴지진 않았고, 나도 음악을 깊이 즐기는 나이가 아니었던 탓인지 주변에서도 유행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워크맨은 찰칵찰칵 뚜껑을 열고 테이프를 바꿔 넣거나 모터로 이리저리 감는 기계적인 맛이 좋았는데, 그게 기꺼이 감수할 만한 불편함이 되진 못했던 듯하다. 수동으로 타이밍을 맞춰 테이프에 곡을 녹음해 넣는 것도 여간 귀찮지 않은 일이었고.

CD플레이어가 발전을 거듭해서 몇 초 내내 튕기지 않는 기술도 도입되고 동영상을 재생하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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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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