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예비역들은 왜 뛰쳐나왔나?
2023/11/07
에디터노트
지난 4일과 5일 이틀 동안, 해병대 예비역들이 ‘고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50km의 거리를 행군했습니다. 전역한 지 10년 이내의 젊은 예비역부터 중년의 선배 예비역, 군 장교 출신 예비역까지 한데 모인 건데요. 해병대 채 모 상병이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지, 석 달이 넘게 흐른 지금. 해병대 선배들은 뭘 요구하고 있는 걸까요.
해병대사관총동문회 소속 예비역 장교,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의 정원철 전 위원장과 이야기했습니다.
Q. 지난 주말 해병대 예비역들의 행군은 어떻게 추진된 건가요.
임철수(가명) 해병대사관 총동문회 소속 예비역장교
채 일병 순직에 대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게 해병대사관 동문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군의 가장 큰 목적은 국가수호 즉 전쟁을 방어하는 능력이지만, 평시에는 민간인들을 위한 대민 지원 작전 역할도 하게 되죠. 저도 군에 있을 때는 그게 그저 당연한 군의 역할로 여겼구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채 일병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통해 대민 지원작전의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병대 뿐 아니라 군대에 갈 수 있는 남아의 인원 자체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까운 우리 군인들이 국가부름으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상황에서, 대민 지원작전의 절차나 형태가 무작위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고 있고 심지어 윗선에 잘 보이기 위한 행동으로 보이는 작태가, 아까운 젊은 청춘을 순직하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대부분의 동문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원철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 전 위원장
저는 2011년에 입대해서 2013년에 전역했는데요. 전역 후 10년 동안 한 번도 해병대 활동에 나선 적이 없었어요. 채 상병 사건이 나고도 처음에는 알아서 잘 해결되겠거니 했습니다. 8월까지 쭉 지켜봤는데, 가장 책임져야 할 임성근 사단장이 물러나지 않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81기 동기회에서 기자회견 할 때 현장에 찾아갔고, 그 때부터 오픈 카톡방(링크)을 중심으로 예비역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4-5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한 500명까지 늘었어요. 이번 행군 집회는 해병대사관 81기 동기회가 주도하고 해병대사관 총동문회와 저희는 서포트하는 방식으로 함께 했습니다.
Q. 해병대 예비역들이 이렇게 집단행동을 하는 건 이례적인 거 아닌가요.
임철수(가명) 해병대사관 총동문회 소속 예비역장교
저는 이제 50대 중반이 됐습니다만 예비역 해병대가 현역의 일로 단체 성명 및 기자회견, 집회성 행군을 하는 것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의 사상 이념에 따라 촛불이니, 태극기 부대니 소수의 모임으로 참여한 행동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해병대 총동문회가 성명서에, 기자회견을 한 것은 처음입니다.
정원철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 전 위원장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기수 높은 선배님들과 얘기를 나눠봐도 전례가 없는 일이더라고요. 한참 옛날에도 군대에서 사람이 죽으면 윗선에서 은폐하고 그런 일들이 쭉 있었어요.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잖아요. 윤승주 일병 사건과 이예람 중사 사건을 겪으면서 군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을 독립기구가 조사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고요. 그런데 왜 군이 개입하느냐는 말입니다. 시대가 변했고 법이 바뀌면 뭔가 나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어요.
저희의 동력은 분노와 슬픔입니다. 어떻게 자신의 부하가 죽었는데 책임을 지지 않고 뻔뻔하게 있을 수 있는가, 보수 정부가 어떻게 이렇게 군 문제를 홀대하는가에 대한 분노이고요. 슬픔은 채 상병이 묻힌 대전 현충원 방명록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그 분노와 슬픔을 동력 삼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