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가 사라지고 있다

남궁민
남궁민 인증된 계정 · 판교와 여의도 사이
2023/01/12
처음 인턴으로 언론사 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쓰기 싫었던 말이 '오너(Owner)'였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주식을 해오다 보니 '나도 주주인데, 그럼 난 주인이 아니냐?' 하는 호기였습니다. 꾸역꾸역 직급으로 써놓은 기사는 데스크를 거치면서 죄다 오너로 수정돼 나갔습니다.

'오너'는 이상한 말입니다. 원론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선 기업의 주인은 주주입니다. 이름도 주인 주(主)잖아요. 하지만 누구나 주주가 주인이 아닌 걸 압니다. 대주주가 주인이죠. 그런데 더 희한한 건 대주주의 지분이 '대(大)'도 아닌 1~2%도 많습니다. 소유하지 않으면서 지배합니다.

그런데 이 '오너'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출처: 빅카인즈

1990년부터 주요 일간지/경제지/방송에서 '오너'가 언급된 횟수의 추이입니다. 사실상 창업자나 기업을 이어받으실 도련님을 부르던 오너라는 말이 2015년을 기점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점차 회장이나 사장 같은 공식 직함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지는 겁니다. 지금 추세면 정치면의 '총재', 사회면의 '○○녀' 같은 말처럼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반면 '거버넌스'의 언급량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용어 자체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뜻하는 중립적인 의미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주 지지에 기반해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정상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말합니다. 2020년에는 마침내 '오너'의 언급량을 뛰어넘습니다. 오너가 사라진 자리를 거버넌스가 채우고 있습니다.


땅콩과 롯데가 불지핀 2015년

2015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에서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꺼냅니다. 보수 정당에서 주도했다는 점이 의외인데요. 단초는 롯데 경영권 분쟁입니다. 늙은 창업자를 둘러싼 형제의 다툼에 '일본 기업'이라는 인상까지 덫씌워지며 여론이 불탔죠. 당시 창업자 일가는 2.4%의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기업사에 한 획을 그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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