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2024/06/04
내게 본다는 행위는 기억으로 완성된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제대로 본 것이 아니다.
- 신유진, <창문 너머 어렴풋이>, 시간의 흐름, 122쪽
어려서부터 남들보다 기억력이 안 좋았던 나는 보는 것에 서툰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마음의 시력이 약한 사람. 기억력이 안 좋은 걸 알아서,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게 습관이 되고 살아가는 일의 일부가 되었다. 시력이 약해 보는 일에 더 정성을 들였고, 그 감각이 글로 포개졌다는 작가 신유진처럼 내게도 글쓰기는 시력을 교정하는 일이었으려나.
신유진 작가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에는 유독 ‘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감각’에 대해 써 주길 제안받았고 그게 모호해 ‘시각’으로 좁혀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이 책은 ‘보는 일’을 주제로 쓰인 책이다.
작가의 보는 일은 그녀의 집에 있는 두 개의 창에서 시작된다. 어둠을 보여주는 서향 창은 기억으로 통한다. 빛이 들이치는 남향 창은 빛이 남긴 흔적과 얼룩을 더듬는 일로 이어진다. 그렇게 두 개의 창 앞에서 그녀가 길어 올린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작가는 친절하게도 창 앞에 우리를 위한 의자를 준비해 두었다. 그녀가 내어준 의자에 앉아 한껏 열어준 창을 내다보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글과 맞닿은 자신의 기억과 빛의 얼룩을 마주하게 된다.
내 글이 방이라면…, 글자 가득한 방에 기억이 보이는 창 하나와 빛이 들어오는 창 하나를 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거기, 창가에는 당신을 위한 편안한 의자를 가져다 놓을 겁니다. 상상만으로도 이 작은 방이 벌써 환해지는 기분입니다.
창가에 잠시 머물다 가시겠습니까?
지금,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12~13쪽)
그녀가 서향 창으로 보여주는 기억의 창고에는 어린 시절을 보낸 빨간 벽돌 이층 집과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