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는 또 하나의 계급이다
2023/03/30
김민정 l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99년 스타벅스 한국 1호점이 이화여대 앞에 생길 때만 해도 커피는 취향과 감각의 표현이었다. 원두의 원산지는 어디이며 산미와 풍미는 어떤지가 커피 시음의 주요 포인트였다. 2007년 화제의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주·조연이 모두 바리스타란 직업을 가진 것도 커피라는 새로운 ‘구별짓기’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2023년 ‘지금 여기’의 커피는 어떤가. 우리는 매일 스타벅스에 간다. 그곳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인터넷 강좌를 듣고 업무 미팅을 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커피를 마신다. 커피는 더 이상 바리스타의 전문적인 손길에 의해 제조되는 ‘고급 기호식품’이 아니다. 특히 ‘얼죽아’를 고집하는, 추운 겨울에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Z세대에게 커피는 테이크아웃 전문매장에서 990원에 파는 값싼 각성제일 뿐이다.
일명 ‘생명수’라고 일컬어지는 Z세대의 ‘아아’는 한 잔에 20온스(591ml)다. 성인 팔뚝만 한 텀블러에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 20대의 모습을 대학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박카스 대신, 그들은 고(高)카페인의 ‘아아’를 마신다. 그렇게 잠을 깨우고 그들 안의 희망과 절망을 깨운다. 591ml 당 990원. 편의점에서 파는 참이슬 소주 한 병(360ml)이 1,950원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Z세대에게 ‘아아’는 값싸게 마실 수 있는 ‘서민’ 소주보다 더 지독한 커피 한 잔의 현실이다.
'아아' 권하는 사회와 드라마 <더 글로리>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1921)에서 만취해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는 누가 이렇게 술을 권했느냐고 묻는다. 남편은 푸념하듯 대답한다.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했다오!” 그렇다면 2023년 대한민국은 무엇을 권하는 사회인가. 바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다. 학벌 불문, 직업 불문. 성별 불문. Z세대는 고카페인 ‘아아’를 마신다. ‘아아’ 권하는 사회. 누가 그들을 ‘아아’에 만취하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