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철민영화는 일본 사회에 축복이었을까

윤재언
윤재언 인증된 계정 · 일본/한국/동아시아 연구자
2022/12/19
일본 노동의 축 무너진 계기 된 국철 민영화 다시 보기

얼룩소라는 공론장에서 굳이 ‘일본 국철 민영화’라는 화두로 첫 글을 쓴 것은, 단순히 이 사안이 ‘요금이 올랐다, 내려갔다’, ‘서비스가 좋아졌다, 나빠졌다’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국철 민영화가 근본적으로 일본 정치와 노동의 관계를 바꾸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는 1980년대 보수당 대처 정권의 노동조합 탄압 뒤에도, 야당 노동당은 변신을 거듭해 블레어 총리 때 집권까지 했지만, 일본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일본 사회당은 비슷한 시기 자민당과 연정을 하는 등 무리수 끝에 일부가 새로운 민주당 세력으로 흡수되고, 잔존세력은 사민당을 결성한다. 이러한 일련의 좌파 몰락 출발점에, 철도 민영화를 대표로 한 1980년대 ‘개혁의 정치’가 있었다.

자민당 보수 정치 중심인물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전후 정치의 총결산’을 내걸고 다나카 카쿠에이의 후원으로 1982년 총리 자리에 오른다. 안보 문제는 물론, 일본 좌파 세력에 대한 대결 의식이 강했던 나카소네는 미국 레이건 정권, 한국 전두환 정권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진한 인물이기도 하다. 1970년대 일시적으로 불었던 데탕트 분위기가 식고, 다시금 냉전 구도가 강화되던 시기, 일본에서 냉전적 사고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전후 정치의 총결산은 좌파 세력의 최대한의 약화를 의미하는 셈이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출처: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https://www.kantei.go.jp/jp/rekidainaikaku/071.html)


이런 나카소네가 국내적으로 추진한 게 개혁의 정치다. 전임 스즈키 젠코 총리 밑에서 행정관리청 장관이었던 나카소네는1981년 행정개혁 논의기구 ‘제2차 임시행정조사회(임조)’를 출범시킨다. 당시 임조 회장 도코 도시오(도시바 전 회장)에게는 행정 개혁의 밑그림을 그리게 한다. 제2차 임조가 ‘도코 임조’라 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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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경제신문기자로 일하다, 현재 일본 도쿄에서 연구자로 제2의 인생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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