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의 일상파괴술⑤|지층: 강아지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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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5


친구네 집 강아지 오차가 집을 나갔다.
토요일 저녁 오차를 집에 두고 잠시 외출한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문은 열려 있었고, 오차는 집에 없었다.
***
오차는 걸쇠가 고장난 문틈을 밀고 집을 나갔다.
친구가 살고 있는 언덕 위의 오래된 아파트 뒤쪽으로는 동네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는 나지막한 산 두 개가 있고, 그 아래로 내려오면 도심이다. 오차는 이 두 개의 산에서 자주 산책을 했고, 그래서 우리는 오차가 여기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술을 마시고 있던 나와 내 여자친구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무작정 아파트 근처로 걸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산을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눈을 크게 뜨고 산 주변을 돌았다.
다음날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는 전단지를 뽑아 두 산의 등산로 초입, 갈림길, 동네 주변에 붙였고, 문을 연 가게마다 들러 혹시 오차를 보면 연락을 주시라 부탁했다. 나와 함께 사는 메론이가 집을 나갔을 때 큰 도움이 되었던 각종 동네 커뮤니티와 앱에도 게시물을 올렸다.
나와 내 여자친구는 산을 올랐다. 등산길이 갈라지는 길목마다 친구가 먼저 붙이고 간 전단지를 확인했다. 사람이 잘 가지 않는 길들도 풀을 헤치고 확인하며 오차를 불렀다.
만약 오차가 도심으로 내려온 것이라면 사람들에게 진작 연락이 왔었을 거란 전제를 가지고, 우리 네 명은 산 입구에서 만나 각 등산로로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더 샅샅이 오차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작은 산이라고 해도 사람 네 명이,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길을 중심으로, 아무렇게나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을 강아지 오차를 찾는다는 건 막연하고 난감한 일이었다. 우린 산을 돌며 등산객들과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전단지를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다시 해가 저물 무렵, 친구에게 복수의 목격 제보 전화가 왔다. 등산로 초입에 길고양이들을 위해 만들어 둔 쉼터를 서성이며 고양이 사료를 먹으려던 오차를 사람들이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고양이 쉼터로 달려갔고, 미리 챙겨 온 사료와 강아지가 쓰던 방석, 장난감을 두고 배가 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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