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초심을 잃은 한 지식인의 자화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3/08/10
  • 변광배 /한국외국어대 미네르바 교양대학 교수 


<Faith> 시리즈, 2011-박성호

2005년의 일이다. 참여지식인의 대명사인 사르트르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해에 나는 독일 국적을 가진 한 대학교수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나는 어떻게 사르트르를 만나게 되었는가'라는 제목의 기획에 동참한 적이 있다. 전세계의 사르트르 연구자 100명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받는 기획이었다. 이 기획의 결과는 독일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후일 다시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또렷하지는 않지만 그때 내 답변은 대략 다음과 같이 기억된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0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방황하다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쉽게 적응하지 못하다 석사학위 논문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우연히 집어들게 된 책이 바로 참여문학론의 경전으로 여기는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였다. 문학의 근간인 '글쓰기'를 '드러내기', '고발하기', '변화시키기'와 동의어로 보고, 참여작가는 그가 소속된 사회의 지배세력과 늘 적대관계에 있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 책은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작가의 글쓰기를 '항구혁명'의 한 수단으로 여기면서도 문학작품의 작품성을 포기하지 않은 사르트르의 문학관에 끌렸다. 당시 나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뜨거운 욕구와 개인적으로 선택한 공부에 충실해야 한다는 학문적 욕구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갈등 해결에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이 유력한 해결책이 되었다. 이것이 내가 사르트르와 처음으로 만나게 된 계기이다. 물론 대학 시절 수업 시간에 '실존주의'라는 용어를 위시해 사르트르, 카뮈 등의 이름을 듣기는 했으나, 본격적으로 사르트르를 공부한 것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쓸 무렵이었다. 내가 만난 사르트르는 다름 아닌 참여작가, 참여지식인으로서의 사르트르였다.

내가 여기서 과거 기억의 한 부분을 들추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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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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