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약이란] 백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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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7

By 강양구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다. 바이러스 유행 1년도 안 되어 무려 세 종류 이상의 백신이 세상에 나와서 작년(2020년) 12월부터 접종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도 여름 이전에 백신 효과를 볼 줄 알았다. 다행히 2월 말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글을 마무리하는 4월 중순까지 백신을 둘러싼 모든 일(백신 확보부터 접종까지)이 더디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백신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을 짚는 일이야말로 과학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과학은 백신을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그것을 유통하고 접종
하고 나아가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에는 과학 외에도 많은 것이 필요했다. 복잡한 사정을 하나씩 살펴보자.



아무튼, 과학

인류는 운이 나빴다. 하지만 또 좋았다. 2020년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치고 나서 고작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이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양팔 벌려 2미터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뿐일 때 다수의 과학자는 심각한 열패감에 사로잡혔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4차 산업 혁명’ 어쩌고 했던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3월부터 모더나 같은 미국 바이오 벤처에서 백신을 개발해서 임상 시험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릴 때도 이런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백신을 개발하고서 아스트라제네카와 함께 임상 시험에
들어갔고, 화이자도 독일의 이름 없는 바이오 벤처 한 곳(바이오엔테크)과 손잡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여전히 분위기는 반신반의였다.

그러다 여름에 세계 곳곳에서 3상 임상 시험이 진행되더니, 정말 기적처럼 늦가을(2020년 11월)에 중간 결과가 발표되었다. 유행 상황이 나빠서 사정이 급했던 미국, 영국, 유럽연합 (EU) 등은 앞다퉈 그 결과를 토대로 긴급 사용 승인을 내주기 시작했다. 빨라도 접종에 수년이 걸릴 줄 알았던 백신이 이렇게 1년 만에 세상에 등장했다.

화이자 같은 기업을 돈방석에 올려놓은 이 기적 같은 백신 개발의 이면에는 뜻밖에도 돈벌이와는 무관한 과학기술 연구가 있었다. 모더나나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이렇게 빨리 mRNA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던 데는 환자 맞춤형 암 백신 개발에 10년 이상 몰두해 온 과학자 여럿의 피땀이 있었다.

옥스퍼드 대학교-아스트라제네카의 감기 바이러스(아데노 바이러스) 전달체를 활용한 백신도 마찬가지다. 이전에 에볼라나 메르스처럼 유행 지역이 가난하거나 (에볼라 바이러스) 시장이 협소해서(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 돈벌이에 도움이 안 되는 백신을 감기 바이러스 전달체를 이용해서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 논리를 뒤로 제쳐두고서 뚝심 있게 밀어붙인 과학기술 연구가 바이러스 유행에서 전 인류를 구할 잠재력을 가진 백신 개발로 이어진 일은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만하다. 더구나 옥스퍼드 대학교-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공익을 위해서 판매 이익도 포기하기로 했다. 조롱으로 불리는 ‘4달러 백신’이 가능한 데에는 이런 숨은 이유가 있었다.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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