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돌아와 주세요, 보고싶어요 선생님"
2023/08/31
과거와 현재, 싸움의 기록: 저는 성폭력과 교권 침해 생존자입니다
공론화 이후 병가를 시작했지만, 단 하루도 쉬지 못한 채 몇 달을 보냈다. 새해가 되고 방학 기간이 시작되었는데도 단 하루도 단 한시도 마음 놓고 쉴 수 없었다. 학교, 경찰청, 교육청 상담 센터, 정신의학과, 변호사 사무실 등을 오가며 고단한 나날을 보냈다. 반짝이며 찬란하고 충분하게 지날 줄 알았던 연말연시는, 매일 복용해야 하는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 계속되는 악몽과 떨칠 수 없는 두통, 신체 불편감, 곤두선 신경과 불안, 우울, 분노, 더러운 기분, 피로로 점철되어 지나갔다.
친한 친구들과 미리 잡혀있던 연말 약속에 나가 웃고 떠들어도,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불안하고 우울해졌다. 모임에 나가서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술을 마시는 것조차 두려웠다.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쩌다 모임에서 내 이야기를 하게 되면 괜히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아 친구들에게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그냥 마시자, 그냥 다른 재밌는 얘기 하자.” 그런 말을 하며 술잔에 손을 댈 때는 딱 죽고 싶었다.
“어차피 나 오늘 지나면 또 서면 쓰고 상담하러 가고 학교 들르고 그래야 하니까 지금은 그냥 재미있고 싶어. 우리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데.”
친구들은 내가 살이 빠지고 힘들어 보인다고 안쓰러워했다. 그날 술은 아주 조금 마셨는데, 별안간 피를 토했다. 다음날 병원에 가자, 위장과 식도가 약해진 상태라며 빈속에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먹으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정신과 약에 위장약까지 먹다니, 중얼거리며 멍한 정신을 차리고 변호사 사무실 방문, 기자분들과의 면담 등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또 커피를 마셨다.
기분전환을 위해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순간들을 SNS에 올릴까 싶다가도, ‘피해자다운’ 모습이 아니라고 지탄받을까 봐 주저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일상을, 평범하고 괜찮은 순간들을 보낼 자유가 있는데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순간들에 나는 자꾸 우울해졌다.
주변에서 피해자로서의 나를 재단하고 판단할까 두려워졌다. 괜찮은 순간들마저 괜찮으면 안 될 것 같고, 실제로 대부분의 순간 별로 괜찮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있을 때 내가 괜찮은지 살피는 것이 부담스러운 적도 있었다.
병가 기간에, 학교에 짐을 챙기러 가거나 서류 작업을 하러 가거나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려 방문해야 할 때, 학생들은 물론이고 동료들을 마주치는 것도 두려웠다. 마주친 동료들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친하지 않은 동료들, 그리고 몇몇 이들은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렵기도 했다.
개의치 않으려 했지만, 동료들에게 괜찮은 척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것도 그렇다고 울상으로 다니는 것도, 그 어떤 상태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평소 매우 외향적이고 밝고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내 원래의 모습, 원래의 사회적 자아대로 행동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다고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절망하고 축 처진 모습만 보이기도 싫었다.
내 업무, 내 수업을 동료들이 나누어 분담하고 있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마음의 부담 또한 컸다. 그것이 마음에 큰 짐이 되어서 한동안 괴로웠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도, 매일 꾸는 악몽에서 나는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거듭 말하고 있었다. 직장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수년 전 또 다른 교권 침해 사안으로 인해 교직을 떠나고자 마음먹었을 때 나를 붙잡은 것은, 당시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교원평가에 남긴 말들이었다.
학부모 악성 민원을 견디다 못해 잠시 병가를 쓰는 동안에 교원평가 서술형 항목에 아이들이 남겼던 말들.
‘선생님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보고 싶어요’, ‘돌아와 주세요’, ‘모든 학생을 사랑으로 대하는 분’, ‘수업에 집중이 잘 되고 우리 쌤이 최고예요’, ‘그립습니다’, ‘수업 이렇게 잘하시는 분 없다’, ‘밝고 친절하다’, ‘잠이 안 오는 수업이다’, ‘질문을 하면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꼭 상세하게 답변해 주신다’, ‘선생님 수업을 듣고 과목에 흥미가 생겼어요’, ‘수업이 재미있다‘
아이들이 남긴 말들을 하나씩 읽으면서 교직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들게 했던 모든 것을 원망하며 목 놓아 울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교원평가에서 발견한 어떤 말 때문에 교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줄은, 매일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견디게 될 줄은, 한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 교사의 긍지가 다 짓밟히는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미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생각했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가족들이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걱정하며 잠 못 이루는 것이 마음 아팠다. 그래서 나는 괜찮은 척을 했다. 씩씩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잘 먹고 잘 자는 척을 했다. 혼자서 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친구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도 싫고 걱정시키는 것도 싫었다. 괜찮아지고 싶었다. 그러나 무너진 건강과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슬프게도, 성폭력과 교권 침해를 겪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전직 고등학교 교사(~2023. 8.)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을 공론화(2022.12.) 했습니다.
악성민원을 빌미로 한 교육청 감사실의 2차 가해(2023.4.)로 인해 사직원을 제출했습니다.(2023.9.1.~ 프리랜서)
@오혜민 저도 그렇게 교직에서 7년을 버틴 것 같습니다. 이제 학교 밖에서 동료들과 끝까지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상황이, 환경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서로를 지탱하고 버티게 만드는 따스한 말들이 또다시 이 지옥에 머물게 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요즘 유독 자주 듭니다. 마지막 문단이 그래서 더 묵직하게 다가오네요.
@tkxhd21 안녕하세요 선생님, 여기 교사들의 목소리에 함께 해주세요. 댓글을 남겨주시면 얼룩소가 교권 회복을 위한 지하철 광고에 추진합니다. https://alook.so/posts/54t4eOj
@tkxhd21 감사합니다! 저도 연대하겠습니다.
지금은 느슨한 시민들의 연대와 지지로 버티지만,느슨함을 조직적으로 단련해서 저들과 맞서서 반드시 이겨냅시다. 국가기구들의 폭력, 그 폭력에 기댄 무수한 사람들의 미친 이기심, 지들이 무슨짓을 하는지 배우지 못하고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마초들의 문화가 된 2차가해... 저도 돌아보며 많은 반성을 하게됩니다.
무수한 폭력들을 견디고 이기는 힘은 결국 조직입니다.
저도 노동현장에서 그 조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이렇게 손가락 연대로 응원합니다.
지금은 느슨한 시민들의 연대와 지지로 버티지만,느슨함을 조직적으로 단련해서 저들과 맞서서 반드시 이겨냅시다. 국가기구들의 폭력, 그 폭력에 기댄 무수한 사람들의 미친 이기심, 지들이 무슨짓을 하는지 배우지 못하고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마초들의 문화가 된 2차가해... 저도 돌아보며 많은 반성을 하게됩니다.
무수한 폭력들을 견디고 이기는 힘은 결국 조직입니다.
저도 노동현장에서 그 조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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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환경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서로를 지탱하고 버티게 만드는 따스한 말들이 또다시 이 지옥에 머물게 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요즘 유독 자주 듭니다. 마지막 문단이 그래서 더 묵직하게 다가오네요.
@tkxhd21 감사합니다! 저도 연대하겠습니다.
@오혜민 저도 그렇게 교직에서 7년을 버틴 것 같습니다. 이제 학교 밖에서 동료들과 끝까지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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