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오펜하이머>
20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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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의 다양한 동아리들 가운데 락밴드(혹은 그룹사운드)는 아주 득톡한 집단이다. 다른 동아리보다 훨씬 큰 열정을 요구하다보니 유급하는 사람도 많지만 성적이 훌륭한 경우도 적지 않다. 내부의 규율이 엄격하고 연주회를 앞두고는 '곡검사'란 빌미로 '얼차려'가 행해진다. 그래서 조직생활에 특화한 '처세의 달인'도 있지만 동시에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고독한 아웃사이더'도 있다. 그리하여 의대 락밴드의 OB를 살펴보면 매우 다양하다. 경영상태가 좋은 중소병원을 가진 '오너원장', 학문적 성취가 뛰어난 의대교수, 강호에서 이름을 떨치는 개원의, 그리고 인생이 꼬여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생사조차 애매한 사람, 이 모두를 찾을 수 있다.
Dr.Abnormal은 그런 '락밴드 OB'에서도 아주 특이했다. 물론 언뜻 보면 아주 평범하다. 유급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최상위권도 아니었다. 친화력이 좋은 '인맥의 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독한 아웃사이더'도 아니었다. 외모도 그랬다. 키는 꽤 컸지만 팔다리는 밋밋하고 몸통은 전반적으로 약간 말랐으나 배에는 꽤 살이 붙어 대중이 '의사' 혹은 '의대생'에 대해 품은 편견에 꼭 들어맞는 체형이었다. 다소 길쭉한 얼굴도 커다란 안경 외에는 별달리 도드라진 특징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특이한 이유는 성격에 있었다. 윗사람에게는 굽신거리고 아랫사람에게는 가혹하며 조직의 관행과 불문율에 충실한 것은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성격이지만 Dr.Abnormal은 사건 전체를 바라보지 않고 특정한 부분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그게 너무 심해 그의 평범한 부분조차 특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내과를 전공하면서 그런 특징은 더욱 강해졌다. 세부전공으로 심장내과를 선택하고 교수가 되고자 노력하던 시기에는 '최악의 단계'에 진입했다.
그래서 Dr.Abnornal이 우연히 응급실에 들러 만든 '그 사건'을 잊을 수 없다. 당시 나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였는데 패혈증 쇼크에서 끝내 회복하지 못한 환자에게 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