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는 아니지만 셀카를 찍곤 합니다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2/27
셀카(셀피)를 자주 찍는 편이다. 좋아하는 편이라고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걸 인정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게, 셀카라는 행위의 이미지로 인싸+ 여성적+자아도취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셀카는 꼭 외향적이며 인스타그램 하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만 찍으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알게 모르게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만이 시대에 뒤쳐진 편견을 가진 것이면 참 좋겠지만, 얼굴이 나오는 셀카를 찍자면 주변 남자들이 ‘사진은 뭐하러 찍어’, ‘웬 셀카를 찍냐’ 등으로 유난이라는 반응이니 셀카는 ‘남자들끼린 굳이 안 해도 되는 짓’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좀 다를지 모르겠는데, 일단 내 주변 남자들 사이에선 그렇다. 하기야 나도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한 기간이 길어서 이해는 한다.

대학교 1학년 극초기에 선배들과 롯데월드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신기한 마음에 기록용으로 셀카를 여러 장 찍었는데, 그걸 본 선배가 “너 셀카 되게 좋아하는구나?”라고 해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세상에, 내가 셀카를 좋아한다고? 지금이야 아무렴 어떠랴 싶지만, 그땐 셀카 찍기를 거의 그만두었다.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탓이다.

그 일이 원인이 된 것인지, 나는 오래도록 사진 찍히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남이 찍어줬을 때 별로 그렇게 마음에 드는 꼬락서니로 나오는 경우가 없다고 느낀 탓이다. 다들 자기 생긴 것과 대충 타협하며 적당히 정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때 나는 그런 타협 방법을 잘 익히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20대에는 내 사진이 많지 않다. 심지어 나름대로 열정적인 연애를 하던 시절에도 애인이 나처럼 사진 찍히길 꺼린 탓에 같이 찍힌 사진이 단체 사진과 거울에 찍힌 사진뿐이다. 둘이서 오붓하게 셀카를 찍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회스러운 일이다. 종국이 어떻든 인생의 몇 페이지인데 사진 몇 장 정도는 남겼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사귀는 사람이 없어서 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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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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