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살짜리 주민번호 조작해 성인 교도소 보낸 나라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3/12/11
좋은 영화를 보았다. 이제껏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민망해질 만큼 의미 깊은 영화였다. 지금껏 40년 가까이 살아온 한국 사회에 이런 면이 있었는지를 돌이키게 하고, 폭력과 비겁, 부조리함과 대면하여 아연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 안엔 소위 가졌다는 이의 무지, 배웠다는 이의 비겁, 가난한 자들의 용기며 작은이들의 지혜가 녹아 있었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이야기다.
 
영화 속엔 갓 중학교에 들어갈 법한 어린 아이부터 스물을 조금 넘긴 남녀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들이 경찰에 끌려가서는 건장한 형사에게 따귀를 맞고 쓰러지고, 유치장에 갇힌 채 집에는 연락조차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갔던 사연, 그 어린 여자아이들을 보름가량 유치장에 가둬두고서 갈아입을 속옷조차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갓 스물을 넘겼을 어떤 사내는 검찰청에 끌려가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되도 않는 이유로 두들겨 맞았다는 기억을 떠올린다. 극중 가장 어린 여자아이로 만 열네 살에 불과하던 여자는 주민번호 앞자리가 바뀐 채 성인교도소에 수감되어 형기를 채워야 했다고, 그게 부당하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눈물짓는다.
 
▲ <미싱타는 여자들> 포스터 ⓒ 부천노동영화제

법이 법답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법이 법답지 않았던, 반세기 전 이 나라 수도에서 벌어진 참상을 꺼내어 살핀다. 누군가에겐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고, 그리하여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흔들이 관객 눈앞에서 헤집어진다. 이로부터 관객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나라가 대체 무엇에 빚을 지고 선 것인지를 되새기게 된다.

단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꿔낼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라면 바로 이런 영화를 보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단 하나의 공간, 그 작은 방이 수많은 이들의 삶을 바꿔내었음을 영화가 말한다. 그 공간은 평화시장 어느 건물 옥탑에 자리한 작은 교실이다. 어엿한 학교의 정규 교실은 아니라지만, 이곳을 찾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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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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