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예수'가 아닌 이유_영화 <행복한 라짜로> 리뷰
2022/11/24
이탈리아의 구석진 마을 인비올라타의 주민들은 과거의 시간을 살고 있다. 후작 부인의 담배 농장에서 소작농으로 노예처럼 부려지지만, 품삯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일할수록 빚만 늘어난다. 물론 그 빚이 어디서 나왔는지 따위는 알지 못한다. 애초에 그게 궁금했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겠지만. 이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문자를 읽는 것은 물론 근대적 세계질서와 사회 시스템에 대한 지식 역시 전무하다. 그야말로 봉건시대의 노예가 맞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가련한 농노들도 그들 발아래 하층 신민을 하나 부린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라짜로’다.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2018년 작 <행복한 라짜로>. 제목을 모르고 본다면 작품의 오프닝 시퀀스만을 보고 누구도 라짜로가 주인공이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라짜로가 주변화된 인물임을 명시한다. 그와 함께 영화는 1막 내내(이 영화는 라짜로의 부활 이전과 이후의 2막 구성을 취한다)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라짜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들도 노예나 진배없는 취급을 받는데 그 와중에 순박한 청년 하나를 종처럼 부리는 것이 말이다. 정확히 그 반대다. 노예와 다름없음을 알기에 더 잘 부릴 수 있다. 계층 질서는 하층과 최하층 간의 상호작용으로 고착된다. 물론 이는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개념, 일종의 ‘그들만의 리그’이기 십상이다.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