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2
먼저,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축구에 문외한이지만 여러 사례가 들어있으니 흥미진진하게 읽히더군요.
읽다보니 글의 제목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프레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구팀이 운영되는 방식을 '풀뿌리'와 '자본놀이'라는 양 극단으로 대비시킨 뒤, 어느 한 쪽에 해당하는 사례들의 면면을 짚으면서 빌드업을 하시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 빌드업의 끝에 결국 강남규님이 묻고 싶었던 걸 글 속의 몇 문장으로 압축해보자면 아래 문장들 정도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자본이 결합되지 않은 시도가 오늘날 정말로 유효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하위리그의 무수한 팀들 중 몇몇 팀들은 우연한 계기로 선택되어 자본의 지원을 받고 성장하지만, 그렇지 못한 팀들은 정체된 채로 몰락을 향해 간다. 맨유의 오랜 팬들이 자본의 지배에 반대해 ‘유맨’을 만든 것과 같은 낭만적 사례들이 누적될 수 있는 토양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글을 곱씹으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축구팀 운영 방식을 풀뿌리 대 자본놀이라는 구도는 보는 ...
@강남규 초면에 송구합니다만 뜬금포로 몇 마디 남기고 싶어 댓글을 남깁니다. 아시겠지만 일단 시민구단 형태로 창단되어 지역 팬들을 중심으로 규모를 이룬 뒤 그 다음 자본이 붙고 그 자본 덕분에 더 좋은 선수와 스태프들을 끌어모아 성공한 가장 대표적인 팀들이 유럽 축구 명문팀 고를 때 반드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인데 그 팀들도 현대 축구판에서 최고의 레벨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제 막대한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죠. 권승준님께서 말씀하셨듯 영국 프리미어리그, 아니 유럽 축구 자체가 이젠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입니다. 아마추어~준프로 레벨 사이에서는 몰라도 최고 수준에선 정말 그 풀뿌리라는게 가능하긴 한지 회의적이에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회장은 여전히 소시오라 불리는 선거권을 지닌 시민들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데, 그 선출된 사람이 사업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구단은 골로가는거죠. 몇 년 전 회장 잘못 뽑아 지금까지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있는 바르셀로나가 대표적인 예시일테고요. 그러니까 풀뿌리로 시작한 낭만넘치는 축구팀이든 아니면 그냥 처음부터 자본가가 돈 때려박고 시작한 현실FM팀이든 21세기 축구의 최고레벨에서 경쟁하는 팀이라면 그냥 기본적으로 기업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덧붙여서 솔직히 슈퍼리그가 정말 낭만 대 자본의 대결에서 낭만이 이긴 것인지도 개인적으로는 좀 의문이긴 합니다. 시민구단으로 시작하여 수 십 년 역사가 지탱하는 근본력만으로 최고의 위상을 유지해가며 메날두 시대를 열었던 스페인의 두 팀이, 메날두 시대 이후 오일머니가 쏠리고 중계권료도 차이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영국리그의 자본력과 경쟁하기 힘들어 새 판을 짜보려했던게 슈퍼리그죠. 영국의 현지 팬들이 슈퍼리그에 집단 반발했다고 해서 슈퍼리그 사태를 낭만 대 자본의 구도로 이해하려한다면 놓치는 부분들이 정말 많다고 봅니다. 슈퍼리그 사태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었던 게 파리와 뮌헨이고 영국 팀들의 도미노 철수를 이끌어냈던게 첼시와 맨시티인데, 뮌헨이야 처음부터 근본과 기조를 지켰다고 하더라도 슈퍼리그를 강력하게 비토했던 파리가 카타르 소유였던 것, 그리고 영국 빅6의 도미노 철수를 이끌었던 클럽이었던 첼시와 맨시티가 가장 대표적인 오일머니 구단이라는 걸 고려할 때 (첼시는 이제 미국인 소유이긴 합니다만) 이게 정말 낭만 대 자본의 구도가 맞는지 전 잘 모르겠거든요. 나세르가 세페린에게 붙어서 저항하던 와중에 오일머니 두 구단이 철수하면서 전선이 붕괴된 것인데, 영국 빅클럽 중에서 슈퍼리그를 주도했던 게 미국 소유의 리버풀과 맨유였고 가장 늦게 들어가서 가장 먼저 나온 게 맨시티와 첼시라는 걸 감안한다면, 차라리 미국 자본이 근본력만으로 버티는게 힘에 부치던 스페인 시민구단 둘과 손잡고 유럽 축구의 새 판을 짜보려다가 기성 레짐인 UEFA와 단단히 결합한 오일머니에게 패배했다고 보는 게 더 맞죠. 팬들이 기존의 스포츠 레짐을 수호하기 위해 스스로 결사한 것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들이 스스로 결사하여 지킨 건 낭만이 아니라 그냥 미국과 출신이 다른 자본으로 돌아가던 산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유럽 축구의 시작점은 당연히 지역 주민들이 선수로서, 또 팬으로서 스스로 일궈낸 공동체였지만, 이건 이제 그냥 역사로만 남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건 정말 저만의 생각이라 남들의 동의를 구하지는 않지만, 팬들이 얼마나 많든 어떤 형식으로 팬덤이 형성됐든 팬들이 자본의 횡포에 저항할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슈퍼리그에 대한 영국 팬들의 저항 역시 자신들의 지역 결사체를 자본으로부터 지키겠다는 발로라기보단, 축구 산업을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소비하겠다는 소비자로서의 저항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지금 영국 축구는 승강제가 있건없건 그 자체로 너무나도 자본적인데, 여기에 미국 자본이 들어와 승강제 없애는 것만 자본의 횡포라고 볼 수 있는지는 좀 회의적이어서요.
예전에 썼던, '슈퍼리그'에 관한 글도 하나 남겨봅니다.
https://alook.so/posts/w9tnKz3
@최민규 부산출신 롯데팬으로서 시민구단이 그다지 좋은 발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듭니다...흑흑
@강남규 팬들부터 풀뿌리를 찾아 응원하는 문화라고 하니 문득 K팝 팬덤이 생각납니다. 모든 팬덤이 본질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있듯이 스포츠 팬덤이 K팝 팬덤에서 배울 점이 풀뿌리 팬덤 같기도 합니다. 언더독이었던 BTS를 글로벌 스타로 키워내는 과정에서 팬덤이 했던 역할을 잘 살펴보면 뭔가 스포츠 팬덤이 배울 부분이 있겠단 생각도 듭니다 ㅎㅎ
예전 지방선거 때 "롯데 자이언츠를 시민구단으로 만들고 싶은데 자문을 구한다"는 말을 몇 번 들었습니다. '자본 vs. 풀뿌리' 대립구도에서 나온 구상이었겠지만 제 관점에선 재원을 재벌 돈에서 세금으로 바꾸는 정도의 차이였습니다.
두 분의 글 모두 즐겁게 읽었습니다. 스타트업에서의 보상이 (부족한) 금전 뿐만 아니라 스톡옵션 등의 지분이듯, 풀뿌리 구단들도 우수한 선수들에게 지분 권리를 보상으로 준다면 어떨까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맞는 말씀들입니다ㅎㅎ 사실 맨체스터의 네 팀이 모두 성격이 다르다는 게 흥미로워서 쓰기 시작했고, 거기에 이런저런 사례를 덧붙이다보니 뭔가 프레임을 잡아야 할 것 같아 억지로 잡은 프레임이긴 해요. 개인적으로 오늘날 '좋은 토양'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풀뿌리 축구팀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팬들부터 풀뿌리를 찾아 응원하는 문화인 것 같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팬층이 규모를 이루면 자본이 붙고, 팬층이 더욱 두터우면 자본의 횡포를 견제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니까요(슈퍼리그 사태가 그렇습니다.) 사실 지금은 일부 '강팀'에 지역팬을 비롯한 글로벌 팬들이 쏠리고, 그러니 그 강팀에만 자본이 달라붙고, 그러면서 빈익빈 부익부가 가속화되는 경향이 더욱 큰 것 같고요. 소수의 '대자본'팀과 소수의 '중자본'팀, 그리고 대다수의 '소자본' 또는 '풀뿌리'팀이 경쟁하는 게 현재 상황이라면, 대다수의 '중자본'팀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토양에서 경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습니다ㅎㅎ
@강남규 초면에 송구합니다만 뜬금포로 몇 마디 남기고 싶어 댓글을 남깁니다. 아시겠지만 일단 시민구단 형태로 창단되어 지역 팬들을 중심으로 규모를 이룬 뒤 그 다음 자본이 붙고 그 자본 덕분에 더 좋은 선수와 스태프들을 끌어모아 성공한 가장 대표적인 팀들이 유럽 축구 명문팀 고를 때 반드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인데 그 팀들도 현대 축구판에서 최고의 레벨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제 막대한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죠. 권승준님께서 말씀하셨듯 영국 프리미어리그, 아니 유럽 축구 자체가 이젠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입니다. 아마추어~준프로 레벨 사이에서는 몰라도 최고 수준에선 정말 그 풀뿌리라는게 가능하긴 한지 회의적이에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회장은 여전히 소시오라 불리는 선거권을 지닌 시민들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데, 그 선출된 사람이 사업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구단은 골로가는거죠. 몇 년 전 회장 잘못 뽑아 지금까지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있는 바르셀로나가 대표적인 예시일테고요. 그러니까 풀뿌리로 시작한 낭만넘치는 축구팀이든 아니면 그냥 처음부터 자본가가 돈 때려박고 시작한 현실FM팀이든 21세기 축구의 최고레벨에서 경쟁하는 팀이라면 그냥 기본적으로 기업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덧붙여서 솔직히 슈퍼리그가 정말 낭만 대 자본의 대결에서 낭만이 이긴 것인지도 개인적으로는 좀 의문이긴 합니다. 시민구단으로 시작하여 수 십 년 역사가 지탱하는 근본력만으로 최고의 위상을 유지해가며 메날두 시대를 열었던 스페인의 두 팀이, 메날두 시대 이후 오일머니가 쏠리고 중계권료도 차이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영국리그의 자본력과 경쟁하기 힘들어 새 판을 짜보려했던게 슈퍼리그죠. 영국의 현지 팬들이 슈퍼리그에 집단 반발했다고 해서 슈퍼리그 사태를 낭만 대 자본의 구도로 이해하려한다면 놓치는 부분들이 정말 많다고 봅니다. 슈퍼리그 사태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었던 게 파리와 뮌헨이고 영국 팀들의 도미노 철수를 이끌어냈던게 첼시와 맨시티인데, 뮌헨이야 처음부터 근본과 기조를 지켰다고 하더라도 슈퍼리그를 강력하게 비토했던 파리가 카타르 소유였던 것, 그리고 영국 빅6의 도미노 철수를 이끌었던 클럽이었던 첼시와 맨시티가 가장 대표적인 오일머니 구단이라는 걸 고려할 때 (첼시는 이제 미국인 소유이긴 합니다만) 이게 정말 낭만 대 자본의 구도가 맞는지 전 잘 모르겠거든요. 나세르가 세페린에게 붙어서 저항하던 와중에 오일머니 두 구단이 철수하면서 전선이 붕괴된 것인데, 영국 빅클럽 중에서 슈퍼리그를 주도했던 게 미국 소유의 리버풀과 맨유였고 가장 늦게 들어가서 가장 먼저 나온 게 맨시티와 첼시라는 걸 감안한다면, 차라리 미국 자본이 근본력만으로 버티는게 힘에 부치던 스페인 시민구단 둘과 손잡고 유럽 축구의 새 판을 짜보려다가 기성 레짐인 UEFA와 단단히 결합한 오일머니에게 패배했다고 보는 게 더 맞죠. 팬들이 기존의 스포츠 레짐을 수호하기 위해 스스로 결사한 것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들이 스스로 결사하여 지킨 건 낭만이 아니라 그냥 미국과 출신이 다른 자본으로 돌아가던 산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유럽 축구의 시작점은 당연히 지역 주민들이 선수로서, 또 팬으로서 스스로 일궈낸 공동체였지만, 이건 이제 그냥 역사로만 남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건 정말 저만의 생각이라 남들의 동의를 구하지는 않지만, 팬들이 얼마나 많든 어떤 형식으로 팬덤이 형성됐든 팬들이 자본의 횡포에 저항할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슈퍼리그에 대한 영국 팬들의 저항 역시 자신들의 지역 결사체를 자본으로부터 지키겠다는 발로라기보단, 축구 산업을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소비하겠다는 소비자로서의 저항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지금 영국 축구는 승강제가 있건없건 그 자체로 너무나도 자본적인데, 여기에 미국 자본이 들어와 승강제 없애는 것만 자본의 횡포라고 볼 수 있는지는 좀 회의적이어서요.
예전에 썼던, '슈퍼리그'에 관한 글도 하나 남겨봅니다.
https://alook.so/posts/w9tnKz3
@최민규 부산출신 롯데팬으로서 시민구단이 그다지 좋은 발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듭니다...흑흑
@강남규 팬들부터 풀뿌리를 찾아 응원하는 문화라고 하니 문득 K팝 팬덤이 생각납니다. 모든 팬덤이 본질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있듯이 스포츠 팬덤이 K팝 팬덤에서 배울 점이 풀뿌리 팬덤 같기도 합니다. 언더독이었던 BTS를 글로벌 스타로 키워내는 과정에서 팬덤이 했던 역할을 잘 살펴보면 뭔가 스포츠 팬덤이 배울 부분이 있겠단 생각도 듭니다 ㅎㅎ
맞는 말씀들입니다ㅎㅎ 사실 맨체스터의 네 팀이 모두 성격이 다르다는 게 흥미로워서 쓰기 시작했고, 거기에 이런저런 사례를 덧붙이다보니 뭔가 프레임을 잡아야 할 것 같아 억지로 잡은 프레임이긴 해요. 개인적으로 오늘날 '좋은 토양'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풀뿌리 축구팀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팬들부터 풀뿌리를 찾아 응원하는 문화인 것 같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팬층이 규모를 이루면 자본이 붙고, 팬층이 더욱 두터우면 자본의 횡포를 견제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니까요(슈퍼리그 사태가 그렇습니다.) 사실 지금은 일부 '강팀'에 지역팬을 비롯한 글로벌 팬들이 쏠리고, 그러니 그 강팀에만 자본이 달라붙고, 그러면서 빈익빈 부익부가 가속화되는 경향이 더욱 큰 것 같고요. 소수의 '대자본'팀과 소수의 '중자본'팀, 그리고 대다수의 '소자본' 또는 '풀뿌리'팀이 경쟁하는 게 현재 상황이라면, 대다수의 '중자본'팀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토양에서 경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