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수다 | 코로나로 누군가를 떠나보낸 당신에게
2023/08/29
✉️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당신에게
'이번 연재를 통해 나는 엄마를 떠나보냈던 과정과 엄마의 죽음 이후 달라진 내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추모관에 앉아 감정을 삭이고 엄마를 기억하는 것은 언제든 나 홀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애도의 과정을 공유하면서 코로나로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들과 글로 만나고자 한다.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1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가진 한 개개인이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는 항상 202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서부터 시작한다. 분명 알람을 맞추지 않았는데 이른 아침부터 크게 울리는 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엄마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 엄마는 다급하게 ‘엄마랑 아빠가 코로나에 걸려서 재택 치료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지금 집에서 나가려고 한다'고 했다. 말하는 엄마 목소리가 이상했다. 호흡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혹시 지금 숨을 쉬기가 어려운지 물었다. 엄마는 그러고 보니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당시는 코로나19 델타 변이가 유행하고 있었다. 막 백신 2차 접종이 시작되고 있었고,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단계적 거리 두기가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다급히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대원이 도착하자마자 산소포화도를 측정했다. 55%였다. 산소포화도는 산소가 우리 몸에 적정히 공급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수치이다. 95~100%가 정상 범위, 91~94%는 저산소증 주의 상태, 81~90%는 호흡곤란이 나타나는 상태, 80% 이하는 매우 심한 저산소증 상태를 나타낸다. ¹⁾ 구급대원은 다급히 엄마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있는지 수배했으나 수도권에는 남은 병실이 없었다. 구급대원은 엄마에게 충청도나 다른 지역으로 이송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긴급 환자였던 탓에 몇 시간 대기를 하기는 했지만, 엄마는 운 좋게 서울의 한 종합병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격리병동에서 지내던 사흘간 엄마는 어떻게 치료받고 있는지 상세히 문자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하루에 두세 번씩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는 ‘고유량 비강 캐뉼라 산소 요법'으로 치료받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인공호흡기 모양과 다르게 코에 커다란 호스가 연결된 기계였다. 병원 외 처방 약을 받으려 병원으로 향했지만, 엄마는 코로나 격리병동에 있어서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병원 로비에서 우리는 영상통화를 하며 같이 울었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는 나에게 ‘내 새끼 최고다’라고 말하며 머리 위로 하트를 하는 중년 여성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게 엄마의 마지막 문자였다.
2023년 8월 28일 기준 코로나로 돌아가신 사망자의 수는 총 35,812명이다. 한 사람 주변의 친밀한 관계가 다섯 명 정도 된다고 가정하고 얼추 계산해 보면, 코로나로 누군가를 상실한 사람의 수가 약 17만 9천여 명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우리 엄마의 죽음은 코로나 사망자 숫자에 더해지지 않고 누락되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코로나로 인해 혹은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인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특정 질환과 위기 상황으로 인해 일정 기간에 통상 수준을 초과해 발생하는 사망을 ‘초과 사망(Excess Death)'이라고 한다. 우리 엄마는 코로나로 돌아가셨지만 코로나 사망자 숫자에서는 빠진 ‘초과 사망자'인 셈이다. 2022년 상반기에만 “예년에 비해 약 4만 명이 더 숨졌다.” ²⁾
엄마가 떠난 지 어느새 1년이 훌쩍 넘었지만 나는 계속 엄마의 죽음에 대해 말하려 한다. 이 죽음은 한 개인의 사적인 죽음일 수도 있지만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전염병과 그로 인한 의료공백으로 발생한 사회적 참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회적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사회적 애도'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코로나19 유가족인 내 입장에서는 코로나 사망자에 대한 사회적 애도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연재를 통해 나는 엄마를 떠나보냈던 과정과 엄마의 죽음 이후 달라진 내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추모관에 앉아 감정을 삭이고 엄마를 기억하는 것은 언제든 나 홀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애도의 과정을 공유하면서 코로나로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들과 글로 만나고자 한다.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1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가진 한 개개인이기 때문이다.
일찍 가족을 떠나보낸 친구에게 언제쯤, 이 상실감과 그리움이 사라졌는지 물은 적이 있다. 친구는 지겨울 때까지 계속 떠들다 보면 20년쯤 뒤에 감정이 수그러든다고 했다. 그러면 그 흔적으로 일상이 채워진다고. 엄마도 곁에, 내 안의 수다도 함께, 내 일상의 일부로 채워진다고 말이다. 아직 나는 입이 근질거린다. 매일, 사실 매 순간 상실에 대해, 그리움에 대해, 사랑에 대해, 엄마라 불렀던 노년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는 죽음에 대해 아직 충분히 말하지 못했다.
엄마가 떠난 지 어느새 1년이 훌쩍 넘었지만 나는 계속 엄마의 죽음에 대해 말하려 한다. 이 죽음은 한 개인의 사적인 죽음일 수도 있지만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전염병과 그로 인한 의료공백으로 발생한 사회적 참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회적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사회적 애도'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코로나19 유가족인 내 입장에서는 코로나 사망자에 대한 사회적 애도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연재를 통해 나는 엄마를 떠나보냈던 과정과 엄마의 죽음 이후 달라진 내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추모관에 앉아 감정을 삭이고 엄마를 기억하는 것은 언제든 나 홀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애도의 과정을 공유하면서 코로나로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들과 글로 만나고자 한다.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1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가진 한 개개인이기 때문이다.
일찍 가족을 떠나보낸 친구에게 언제쯤, 이 상실감과 그리움이 사라졌는지 물은 적이 있다. 친구는 지겨울 때까지 계속 떠들다 보면 20년쯤 뒤에 감정이 수그러든다고 했다. 그러면 그 흔적으로 일상이 채워진다고. 엄마도 곁에, 내 안의 수다도 함께, 내 일상의 일부로 채워진다고 말이다. 아직 나는 입이 근질거린다. 매일, 사실 매 순간 상실에 대해, 그리움에 대해, 사랑에 대해, 엄마라 불렀던 노년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는 죽음에 대해 아직 충분히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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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1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가진 한 개개인"이라는 부분이 절절합니다. 가슴을 두드리는 글, 잘 챙겨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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