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중일기] 전선을 간다

최지수
최지수 인증된 계정 · 전세지옥, 선상일기 저자입니다.
2024/02/08
오늘(2월 8일)로부터 2주 전 즈음의 이야기다.
   
아침에 이틀 연속으로 물을 테이블에 내놓지 않았다. 점심 저녁은 잘 내주는데 이상하게도 아침만 물 내놓는 것을 잊어버린다. 다섯 시에 출근하여 아침 식사 시간 시작 시간인 여섯 시 까지도 뇌의 부팅이 덜 되어 사고회로가 잘 돌아가지 않는 듯하다.
조리수는 한 번의 실수는 가볍게 넘어가 주지만 두 번 연속으로 실수하면 한마디 한다. 보통은 집중하라고 하는데 그날의 멘트는 평소와 달랐다. 
   
‘조심해, 너는 모르는 위기가 네게 다가오고 있어.’
   
그 한마디에 나는 불안함의 망토에 온몸이 휘감겨진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부팅이 끝나지 않았던 뇌가 순간적으로 빠르게 회전하며 위기에 빠지는 두 가지 경우에 수에 대해 생각해 봤다.
다른 부서에서 내가 실수를 많이 한다고 조리수에게 손 좀 보라고 이야기를 했거나, 하선했던 오 차장(악독함)이 재승선하는 것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했다. 조리수의 그 한마디에 하루 종일 긴장하며 조리부 선배뿐 아니라 다른 부서의 선배들 눈치도 봐가며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인사를 더 잘해야 하나? 옷차림을 좀 더 단정히 하고 싹싹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나? 
   
하루 동안 눈칫밥을 먹고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뒤에서 설거짓거리를 나르고 있는데 조리수가 설거지하며 한탄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지수 불쌍해서 어떻게 하나 아이고 지수 어떻게 해.’
   
대체 무슨 일이길래 날숨 한 번에 아이고를 두 번이나 연달아 사용하며 나를 걱정하는지 깜짝 놀라 물어봤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오늘 맥주 두 캔 들고 내 방 찾아 온나’
   
막상 설거지를 끝내고 방으로 찾아가니 조리수는 다른 사람들과 게임 중이었다.
고독한 내 방으로 왔다. 방에 외롭게 앉아 두려움에 떨며 배의 엔진 진동 소리를 들으니 고래의 배 속에 갇혀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피노키오가 된 듯하였다. 조리수에게 들었던 두 문장으로 위기에 빠진 사유를 도출한바 저번 항차에 내린 오 차장이 이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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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를 당했고 그 피눈물 나는 820일의 기록을 책으로 적었습니다. 그 책의 목소리가 붕괴돼버린 전셋법 개정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길 바랍니다. 그 후, 꿈을 이루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배를 탔고 선상에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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