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허남설
허남설 인증된 계정 · 집과 동네, 땅에 관심 많은 기자
2023/08/17
아파트의 '대장주(투자 가치가 큰 주식을 가리키는 말)'로 보통 세대수가 많은 이른바 '대(大)단지'를 꼽는다. 단지 규모가 클수록 부동산 가격 하락기에는 잘 버티고, 상승기에는 가파르게 오른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그런데, 10년 전만 해도 한 1000세대쯤 되면 대단지라고 했지만, 요즘은 사정이 좀 다르다. 최근 10년 내 완공한 아파트 단지 480개 중 1000세대 이상 단지는 105개로 20%가 넘는다. 이래서는 그다지 차별성을 띠기 어렵다 보니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단지 기준은 점차 상향돼, 요즘에는 2000~3000세대는 되어야 대단지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현재 서울에서 가장 큰 단지는 송파구의 헬리오시티로 9510세대가 산다. 직방형의 이 단지에서 긴 변은 거의 1킬로미터에 달한다.
ⓒ허남설
대단지가 잠식한 우리 도시에서는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쭉 가난한 도시노동자가 모여 살았던 어느 산동네가 1980년대엔 판자촌에서 빌라촌으로, 21세기엔 다시 뉴타운 아파트로 변신한다. 4000여세대 대단지 아파트가 되기 전, 이 동네에는 마을버스가 다녔다. 간선·지선버스와는 또 다르게, 크기가 작은 마을버스는 도시 구석구석을 다니며 실핏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공사판이 된 5년 동안 멈춘 버스를 재가동하려 하자 대단지 주민이 들고일어나 반대한다. 마을버스는 시끄럽고 위험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이건 몇 년 전 서울 마포구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이곳에는 아직도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마을버스가 다닌 도로는 대단지의 사유지가 아니었고, 마을버스는 대단지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동네를 연결했다. 그럼에도 이 대단지는 마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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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건축을 배우고 건축회사를 다니다 갑자기 기자가 되었습니다. 책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글항아리•2023)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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