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살고 있는 엄숙 앞에서
2024/03/18
노동영화에 관해 준비하고 있는 일정이 있어 의무감으로 보게 된 영화였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위로공단>이라는 영화 제목이나 척 봐도 유쾌해 보이진 않는 포스터를 보고 큰 기대 없이 금방 해치우자는 게 처음 이 영화를 접한 나의 태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예상 외로 아주 빠르고 깊게 몰입할 수 있었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자주 접해 본 편은 아니라 판단하기에 모호한 감이 있지만 영화적으로도 잘 만들어졌다고 느꼈다.
<위로공단>은 여러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큰 줄기로 해서 흘러간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시기에 가장 치열했던 노동자들부터 현대의 승무원들까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노동자들부터 먼 해외의 여성들까지 자연스럽게 비추는 구성은 초반부에 받았던 느낌을 심화하며 크레딧이 나오는 순간까지 영상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영화에서 거의 연속적으로 나열되는 수많은 사건들은 그 자체만으로 심각하고 충격적이어서 심경이 복잡해졌지만, 후반부에서 그 연속적인 스펙트럼에 '나'역시 포함되어 있음을 깨닫는 일은 어쨌거나 나와 일정 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을 구경하는 것을 넘어서는 감정적 움직임을 주는 일이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대사가 아닌 만큼 인터뷰어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거운 진정성이 배여 있어 더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나에게도 더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데모에서 외칠 구호를 정하자고 했을 때, '나도 나이키를 신고 싶다'고 외친 17살의 이야기나, 삼성이 헤어진 애인 같다는 말 등이. 그리고 삶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흘러나왔을 땐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밥 굶고 살지 않는데도 늘 삶을 원망하니까. 치열했던 그들 삶의 순간들을 들을수록 머리 한켠에서는 무기력한 나를 포함한 현대의 많은 청년들이 대비되어 떠올랐다. 대학이 너무 가고 싶었다고 말씀하시는 한 노동자 분의 얘기를 들으면서는 굉장히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지만, 어쨌든 무기력을 반성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