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의 퀴어談] 온수동 사람들을 아시나요?
2024/08/26
온수역, 지하철 1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교차점이자 종점, 서울 남서부 끝자락에 자리한 작은 동네다. 서울 땅덩어리가 커다란 달고나 조각이라면 정말 모양 틀에 점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100미터 남짓만 가면 부천시가 나타난다. 2020년 2월, 그 겨울의 최고이자 마지막 한파가 닥친 날에 지구 멸망이라도 온 듯이 바람에 날린 머리에 운동복인지 일복인지 모르게 헤진 프렌치 테리 트레이닝팬츠 차림으로 30년은 훨씬 더 된 온수동 빌라로 이사해 짐을 풀었다. 유산 문제로 '남들 다하는 결혼도 안 하고 뜻도, 의미도 없이 사는 호랑 방탕한 딸년' 취급을 받고는 40여 년간 레즈비언으로 고군분투하며 몸과 마음을 갉아먹으며 살아온 내 삶이 가엾어서, 엄마와 언니에게 커밍아웃을 해버렸다. 잠시 치앙마이의 태양 아래 오랫동안 얼어붙은 마음을 널어 말리고 돌아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집을 구해 나왔다. 꼴난 유산 때문에 내 마지막 비밀을 피눈물 없는 가족에게 털어놓을 줄은 정말 몰랐다. 직장 생활 20년 하며 굴러보니 그 푼돈 때문에 내가 몇 살에 은퇴할지가 결정된다는 걸 알만큼 영악해진 나 - 더 이상 그들에게 양보할 것이란 없었다.
shit 이란 욕을 얼마나 해댔는지 모르겠다. 너무 춥고 힘든 하루가 끝난 건 욕실에 두 시간 동안 주저앉아 온갖 화학약품을 동원해 줄눈과 바닥에 광을 내고 침실에 쓰러져 누웠을 때다. 20시간을 물과 커피만 마시고 빈속이었던 나는 긴급한 허기를 느껴 당장 가능한 인덕션 위에 라면을 두 개나 끓여 게눈 감추듯 집어넣었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비워진 냄비를 물리 지도 못하고 그대로 누워 10시간을 잤다. 마지막 배웅은커녕 이삿짐을 다 싣고 차에 오를 때까지 '어디 그따위 심보로 잘 사나 보자!'는 저주를 나누며 쫓겨나듯, 헤어진 엄마와 딸. 그 장면을 꿈에서 곱씹다가 놀라서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추위가 지나고 겨울과 봄 사이에 놓인 정오의 햇살이 공유 정원 겸 주차장에 내려앉아 있었다. 겨울날 불을 쪼이듯 눈을 감았다 뜨길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