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세대를 옹호하는 동시에 모욕하기 - 장강명의 <표백> 다시 읽기(3)

칭징저
칭징저 · 서평가, 책 읽는 사람
2023/03/15
장강명, <표백> 초판본 표지
   
작가 장강명은 10쇄 출간을 맞아 쓴 작가의 말에서, 지금은 몇 가지 지점에서 자살선언문을 반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자살선언문이 ‘그럴듯한 난센스’라는 것이다. 첫째, ‘위대함’은 삶의 목표로 추구하기에 적당한 가치가 아니다. 둘째, 현대에도 빈부 격차 해소, 무인자동차와 관련된 딜레마 해결, 보편적 윤리 체계의 확립 등의 과업이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셋째로, 과업과 무관하게 사람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표백>이라는 소설 외부에서 제시한― 장강명의 반박이다.

여전히 현대에 중요한 과업이 많이 있다는 것은 소설 속 ‘나’의 반박, 그리고 과업과 무관하게 사람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소설 속 휘영의 반박과 연견된다. 작품 내 휘영의 반박은 자살선언문에 대해서는 반쪽짜리 답변이다. 하지만 자살선언문이 그저 그럴듯한 난센스라면, 휘영의 반쪽짜리 반박은 자살선언문과는 별개의 새로운 주장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장강명은 <열광금지, 에바로드>에 휘영을 등장시켜 그가 세연과 정반대되는, 사소하고 무가치해 보이는 일들에 매달려 결국은 그 의미를 찾아내는 주인공을 만나게 한다. 이는 <표백>에 대한 작가의 대답인 셈이다.

하지만 청년에 대한 담론은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라고 본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논쟁되고, 생각되어야 한다. 세연의 자살선언문이 그럴듯한 난센스라고 해도, ‘나’와 휘영, 그리고 작가의 반박도 세연의 자살 선언으로 인해 제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적수가 누구인지 알 때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그러니 나는 남은 인생의 길을 바로잡아 주고 내가 누구인지 알려준 세연과 세화 자매에게 감사해야 한다.”라는 ‘나’의 말에도 드러난다. 

결국 온몸을 내던진 발화자로서 세연이 갖는 위상은, 청년 세대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항의했다는 데 있다. 한편으로는, ‘성공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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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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